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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비에 떠밀린 탈북민 여명학교… 새터 겨우 잡고도 ‘막막’
고유찬 기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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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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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우리가 지금 있는 강당이고, 이 옆은 과학실이에요. 2층에는 상담실도 있어요.”

지난 1일 오전 10시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의 ‘여명학교’ 2층 강당. 서울 유일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개학식이 열렸다. 지난 학기까지 서울 중구 남산동에 있었던 여명학교는 이날 가양동으로 옮겨 새 학기를 맞았다. 70여 명 학생은 선생님이 새 학교 시설을 소개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정준호(18)군은 “교실뿐만 아니라 모든 시설이 넓어져 좋다”며 “특히 예전엔 운동장이 없었는데 생겨서 너무 좋다”고 했다.

지난 1일 개학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여명학교’의 모습. 서울 시내 유일의 교육청 인증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중구 남산동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장련성 기자
 
지난 1일 개학한 서울 강서구 가양동 ‘여명학교’의 모습. 서울 시내 유일의 교육청 인증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는 중구 남산동에 있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장련성 기자

2004년 개교한 여명학교는 서울교육청이 유일하게 인가한 탈북 청소년 중·고등학교다. 이 학교를 졸업한 탈북 청소년은 고졸 학력을 인정받게 된다. 교사 13명이 학생 76명에게 중·고교 과목을 가르친다. 40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임용고시에 합격한 교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도 있다.

여명학교가 새로 가양동에 정착하기까진 어려움이 많았다. 학교 측은 중구 남산동의 한 건물을 임차해 사용해오다 계약 만료(2021년 2월)가 다가오자 부지를 직접 사 건물을 세우려고 했다. 지난 2019년 은평구 진관동 은평뉴타운 내 2143.3㎡ 부지를 매입하려 했고, 학생 수도 180명으로 늘린다는 청사진을 세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무산됐다. 여명학교가 이전해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일부 주민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이다. 은평구청에는 ‘이전 반대’ 민원이 빗발쳤고, 2019년 12월에는 ‘은평뉴타운 내 주민 의견을 무시한 여명학교 신설·이전 추진을 막아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까지 올라왔다. 이에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당시 교감)이 ‘무릎 꿇어 줄 어머니마저 없는 탈북 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렸지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전 계획이 무산된 여명학교 측은 건물주에게 호소해 임대차계약을 연장해 왔다. 하지만 작년 말 “올해까지는 반드시 나가 달라”는 통보를 건물주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대체 부지를 서울 밖에서 찾기는 어려웠다. 서울교육청에서 받은 정규 학력 인정이 취소되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결정된 게 현 가양동 부지다. 염강초등학교가 학령인구 감소로 2020년 1월 폐교됐는데, 이곳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급하게 이전이 진행되면서 개학식 와중에도 학교 건물 곳곳에선 가구 배치와 인테리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건물 외벽에서는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9월 1일 오후 서울 남산 소월길에서 서울 강서구로 이전한 북한이탈 주민을 위한 고등학교 여명학교가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9월 1일 오후 서울 남산 소월길에서 서울 강서구로 이전한 북한이탈 주민을 위한 고등학교 여명학교가 막바지 공사를 하고 있다. / 장련성 기자

총 4개 층이었던 염강초 건물 중 여명학교가 사용하는 건 1·2층 두 개다. 4개 층을 모두 사용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나, 임차료 부담이 컸다고 한다. 그래도 기존 건물보다 공간은 넉넉해졌다. 1층에는 교실 외에도 주방·식당이 들어섰고, 2층에는 상담실·악기실도 만들었다. 이전엔 운동장이 없었지만, 새 부지에는 운동장이 있어 학생들이 뛰어놀 공간도 생겼다. 윤예명(18)군은 “예전 학교에는 식당이 없어서 각자 급식을 받고 먼지 날리는 교실에서 식사했지만, 이젠 번듯한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됐다”며 “개학식 날 처음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기분이 새로웠다”고 했다.

여명학교가 가양동에 완전히 뿌리를 내린 건 아니다. 개교 사실이 알려지면 새로 옮긴 곳의 주민들이 학교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낼 수 있고, 2026년엔 다른 기관이 건물에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상지(14)군은 “학교를 4년 더 다녀야 하는데, 2년 반 뒤 학교가 다시 이사 가야 한다고 해 걱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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