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 일본 외상이 9일 국회에 출석, 중국 경찰의 일본 영사관 침입과 탈북자 강제연행 사건에 대해 중국측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東京=AP연합

8일과 9일 중국의 선양(瀋陽)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에 탈북자 3명이 진입한 사건과 8일 선양의 일본 총영사관에 탈북자 5명이 들어가려다가 중국 무장경찰에 연행된 사건은 당사국들인 중국, 미국, 일본과 남북한 등 적어도 5개국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외교적 문제로 비화됐다.
9일 현재 이 문제는 크게 두 갈래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하나는 이들 8명의 처리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중·일간의 외교적 마찰을 어떻게 푸느냐 하는 문제다.

◆ 탈북자들, 북한 송환은 안될 것 확실
최근 잇따라 중국 내 외국 공관에 진입했거나 진입을 시도하다 체포된 탈북자 처리 문제를 놓고 9일 중국측이 처리 방향의 큰 줄기는 잡은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이 문제로 중국 정부와 긴밀히 접촉해 온 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다른 것은 몰라도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지 않으리라는 것은 자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장길수군 일가족 사건 처리 때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외교공관 진입과 관련된 탈북자들을 강제 송환한다는 말은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말했다.

현재 현안으로 걸려있는 탈북자 사건은 4월 29일 베이징(北京)의 한국대사관 앞길에서 체포된 탈북자 3명 8~9일 선양의 미국 총영사관에 진입한 탈북자 3명 사건 8일 선양 일본 총영사관 진입 중 체포·연행된 탈북자 일가족 5명 등이다. 이 중 베이징에서 체포된 일가족 3명은 북한으로 강제송환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한국측이 이미 전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외교소식통들은 이들 일가족 3명과 선양에서 체포된 탈북자들 일가족 5명은 같은 방식으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제3국 추방 형식으로 원하는 곳에 보내지거나 최소한 암묵적인 석방은 가능하리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외교공관 진입과 외국행을 공식 인정한다는 인식을 주게 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쉽게 풀리지 않을 일·중 마찰
8일 오후 선양의 일본 총영사관에 탈북자 김광철·김성국 형제 2명이 진입했다가 20여분 뒤에 중국 무장경찰에 끌려나오기까지 일본 총영사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의 경위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8일에 이어 9일에도 중국에 강력한 항의를 제기하며 ‘5명 전원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으나, 중국은 ‘잘못한 것이 없다’며 일축하고 있어, 외교적 마찰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 신문들은 9일 아침 이 사건을 일제히 1면 톱뉴스로 다루면서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행위”라고 일제히 중국측을 비난했다.
일본 정부도 9일에는 중국에 대한 항의 강도를 높였다. 주일 중국대사를 불러 항의하는 한편, 전날 “냉정하게 대응하라”던 고이즈미 총리도 격앙된 목소리로 “조약 침해라고 생각한다”고 중국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외상(外相)과 정부 부대변인인 관방 부장관까지 나서는 등 정부 차원에서 ‘말’로 할 수 있는 항의는 거의 동원했다. 야당들도 중국에 대한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탈북자 2명이 총영사관에 머물렀던 20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답변과 함께, “그들을 데려가면 안된다고 했으나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들어와 끌고갔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한 일본 외무성 소식통은 “당시 창구에는 중국 현지 채용원들이 대부분이었으며 1명 또는 소수의 영사(領事)가 당황한 상태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었음을 외무성도 시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소식통은 “당시 상황에 대해 외무성은 ‘지휘관 없는 무주공산과 같았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 총영사관은 총영사를 비롯한 주요 관원들이 전날 다롄(大連)시에서 일어난 여객기 추락사고 현장에 파견돼 손이 묶인 상태였던 것으로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또 산케이(産經)신문은 “총영사관의 첫번째 사건 보고에서는 무장경찰이 관내에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보고되지 않았다”며 “치외법권 침해라는 문제의식 자체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9일 외교부 대변인의 외신기자 브리핑을 통해 “외교 공관을 보호하기 위해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을 끌어내 신분을 확인하려는 것이었으므로, 빈(Wien) 영사협약 31조에 따른 정당한 행위”라는 입장을 밝혔다.

연행된 5명을 모두 일본측에 넘기라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음은 물론, 자신들의 ‘위법’조차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로 보아 중국은 일본이 요구하는 ‘5명 인도(引渡)’와 ‘상세한 경위 설명’ 등 두 조건 가운데 후자는 ‘위법 시인’이나 ‘사과(謝過)’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펴는 형태로 매듭짓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언론들은 최근 탈북자 사태와 관련한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다.
/ 北京=呂始東특파원 sdyeo@chosun.com
/ 東京=權大烈특파원 dykwon@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