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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中 군가 만든 정율성 기념사업 논란...공원 만들고 동상·벽화까지
원선우 기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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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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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정율성의 생가. 올 연말까지 이 일대에 ‘정율성 역사 공원’이 조성된다. /김영근 기자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있는 정율성의 생가. 올 연말까지 이 일대에 ‘정율성 역사 공원’이 조성된다. /김영근 기자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鄭律成·1914?~1976)을 기념하는 공원을 광주광역시가 48억원을 들여 조성 중이다. 광주시는 정율성의 항일 독립 정신을 기리고, 한중 관계를 돈독히 한다는 명목으로 10여 년 전부터 정율성로(路)를 비롯한 기념관과 동상, 정율성 음악제 등을 마련했고 전남 화순군도 비슷한 사업을 했다. 이미 수십억 원이 들어갔다. 그러나 단순 좌익 계열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6·25전쟁 때 국군과 맞서 싸운 북한과 중공의 군가를 여럿 작곡한 인물을 대한민국의 세금으로 기념하는 것이 타당한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조성된 ‘정율성 고향 집’의 모습. 정율성이 유년기에 잠시 살았던 집터에 고향 집을 조성했다.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전남 화순군 능주면 관영리에 조성된 ‘정율성 고향 집’의 모습. 정율성이 유년기에 잠시 살았던 집터에 고향 집을 조성했다.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광주시는 동구 불로동 일대 878㎡에 정율성 역사 공원을 연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정율성의 삶과 음악 세계를 기린다는 광장, 정자, 관리 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토지 보상비를 포함, 예산 48억원이 들어간다. 2019년 당초 계획된 예산은 38억원이었으나 토지 보상 갈등 등으로 일정이 늦어지면서 사업비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남 화순군은 2019년 정율성 고향 집(12억원)을 복원했다. 이곳에 전시된 사진에는 ‘정율성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시절 남긴 소중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논란이 일었다. 6·25의 중국식 표현인 ‘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왔다’는 뜻이다. 북한 침략이라는 6·25의 본질을 흐리고 가해자·피해자를 뒤집는 말이다.

정율성의 본명은 정부은(鄭富恩). 생년은 1914년 또는 1918년, 출생지는 광주다. 광주와 화순에서 학교를 다녔고 의열단장 김원봉이 중국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들어갔다. 율성이라는 이름은 김원봉이 음악으로 성공하라는 뜻으로 지어줬다고 한다.

광주 태생으로 일제시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음악가가 되었다. 중국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으며 해방이후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광주 태생으로 일제시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 소속으로 독립운동을 하다 음악가가 되었다. 중국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으며 해방이후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행진곡' 등을 작곡했다.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 중국 시인의 가사를 바탕으로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다. “우리는 노동자와 농민의 자제/ 우리는 인민의 군대/ 두려워 않고, 굴복 않고, 용감히 싸우네/ 반동 무리들을 쓸어버릴 때까지/ 마오쩌둥의 기치를 높이 날린다!” 중공군은 이 노래를 6·25 내내 국군과 유엔군에 맞서 싸우며 불렀다. 이후 중국 당국은 곡명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국군 공식 군가로 사용하고 있다.

정율성은 6·25전쟁 전 훗날 조선인민군 협주단이 된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협주단장을 지냈는데, 이 시기 북한 애국가를 작사한 월북 시인 박세영의 가사에 곡을 붙여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지었다. “우리는 강철 같은 조선의 인민군/ 정의와 평화 위해 싸우는 전사/ 불의의 원쑤들을 다 물리치고/ 조국의 완전 독립 쟁취하리라.” 6·25 때 인민군이 부른 이 노래는 1968년까지 공식 인민 군가였다. ‘조선 해방 행진곡’ ‘조국의 아들’ ‘인민공화국의 가치’ 같은 북한 군가를 짓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광주에 조성된 정율성로 등 기념물에는 그의 친북 행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광복 전 독립운동을 비롯, ‘연안송’ 같은 중국 유명 항일 가곡을 작곡한 이력이 더 부각돼 있다. 정율성은 6·25 전후 북·중을 오가며 활동했다. 1956년 연안파 숙청 당시 중국으로 귀화했다. 1976년 중국인으로 죽은 뒤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묘에 묻혔다. 정율성은 2009년 신중국 창건 영웅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북한에서도 그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다.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는 1991년 ‘음악가 정률성’이라는 영화를 제작했다.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전남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외벽에 그려진 정율성의 대형 벽화. /화순군
 
정율성이 잠시 다녔다는 전남 화순군 능주초등학교 외벽에 그려진 정율성의 대형 벽화. /화순군
광주광역시 양림동 ‘정율성로(路)’ 입구에 있는 정율성 동상.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광주광역시 양림동 ‘정율성로(路)’ 입구에 있는 정율성 동상.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22일 페이스북에서 “정율성이 작곡한 조선인민군행진가는 6·25 내내 북한군 사기를 북돋웠다”며 “6·25가 발발하자 전쟁 위문 공연단을 조직해 중공군을 위로한 사람”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중국 영웅’ 또는 ‘북한 영웅’인 그를 위한 기념 공원이라니, 북한의 애국 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이냐”며 사업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박 장관은 정율성이 김일성에게 받은 포상장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중국은 정율성을 한중 우호 상징으로 내세웠다. 중국 시진핑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정율성을 김교각, 최치원, 김구 등과 함께 한중 미담 사례로 언급했다. 그는 “대일 항쟁이 가장 치열했을 때 양국은 생사를 함께했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베이징대 강연에서 “광주시에는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한국의 음악가 정율성을 기념하는 정율성로가 있다”며 “지금도 많은 중국인이 찾고 있다”고 했다. 정율성은 친북 행위가 명백해 독립유공자로 서훈될 수 없는데도 2018년 노영민 대사의 베이징 주중 한국 대사관은 광복절 경축식에 그의 딸을 초대했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이날 “광주는 정 선생을 영웅시하지도, 폄훼하지도 않는다”며 “광주의 눈에 그는 뛰어난 음악가이고 그의 삶은 시대적 아픔”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업적 덕분에 광주에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이 찾아온다”며 “그 아픔을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고 했다. 강 시장은 “정 선생은 시진핑 (중국) 주석이 한중 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은 인물”이라고 했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로 개통식이 2009년 1월 29일 열렸다. 정율성로에는 사진자료와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설치 됐다./김영근 기자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로 개통식이 2009년 1월 29일 열렸다. 정율성로에는 사진자료와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설치 됐다./김영근 기자

그러나 강 시장이 이사장인 광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정율성 음악 축제 홈페이지엔 정율성의 중공군 위문 등 6·25 관련 행적은 빠져 있다. “13억 중국인의 가슴마다 아로새겨진 작곡가” “중국 3대 음악가 중 1명으로 추앙” 등 표현은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과는 거리가 있다. 광주문화재단은 “2000년 6·15 공동선언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역사적인 첫 만남에 울려 퍼진 곡이 모두 그의 곡”이라고도 했다.

박 장관은 “서재필 박사 등 호남 출신 독립유공자가 2600명이 넘는데 하필 공산당 나팔수 기념 공원을 짓느냐”며 “돈이 되는 일이면 국가 정체성이고 뭐가 필요 없단 말이냐”고 했다. 그는 강 시장이 ‘시대적 아픔’을 언급한 데 대해 “정율성의 군가를 부르며 몰려왔던 적에게 죽임을 당한 수많은 이의 피가 아직 식지 않은 대한민국”이라며 “반국가적 인물을 기념하는 데 국민의 혈세는 손대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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