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양 일본총영사관으로 뒤어들던 김광철씨 일가족을 중국 경찰들이 끌어내고 있다./瀋陽=聯合

'여인 두명과 아이 한명도 일본 총영사관 정문 안으로 모두 들어갔는데, 중국 인민무장경찰이 끌고 나오더군요.'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시 일본 총영사관에서는 지난 8일 오후 2시께 3분여만에 생사길의 희비가 엇갈린 애처로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6월 한국에 입국한 장길수(18)군의 친척 다섯명이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했다 전원 중국 인민무장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이 사건을 목격한 선양의 현지 시민에 따르면 일이 벌어진 것은 오후 2시께.

한미(2) 아빠 김광철(28)씨가 앞서고 바로 뒤에 포대기로 한미양을 등에 업은 엄마 리성희(26)씨와 할머니 정경숙(53), 삼촌 김성국(26)씨 등이 한국 영사사무소 맞은편 미국 총영사관 쪽에서 일본 총영사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일본 총영사관 앞 4차선 길가에서는 아무도 그들을 주목하지 않았다.

일본 총영사관 정문 초소를 지켜 선 인민무장경찰 앞을 지나면서 광철씨가 갑자기 정문 쪽으로 뛰쳐 들어가기 시작했고 갑작스런 사태에 인민무장경찰은 광철씨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사람 한명 드나들만큼 열려있는 일본 총영사관의 좁은 출입구는 이미 광철씨 옷자락을 잡다 엉거추춤 넘어진 인민무장경찰로 막혀 있었다.

그렇지만 사태를 직감한 경숙씨와 한미를 업은 성희씨도 인민무장경찰을 밀어제키며 총영사관 진입을 시도하다 문 안으로 넘어졌다.

이 사이 광철씨의 동생 성국씨도 뒤에서 잡고 늘어지는 인민무장경찰을 뿌리치면서 어머니와 형수, 인민무장경찰이 옥신각신하고 있는 정문의 오른쪽 틈새를 비집고 총영사관 내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렇다고 광철씨와 성국씨만 일본 총영사관 내에 진입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경숙씨와 성희씨도 총영사관 문 안쪽에, 인민무장경찰 한명과 함께 쓰러져 있었다.

총영사관 진입도 잠시.

문 안쪽에서 두 팔을 벌린 채 방어벽을 치고 있던 인민무장경찰 한명은 문 안에 넘어져 있는 경숙씨와 성희씨를 밀어내기 시작했고 문 밖에서는 두 명의 인민무장경찰이 문 안쪽으로 손을 넣어 잡아끌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포대기가 풀어져 문 안쪽으로 넘어져 있던 한미양이 일어서서 철문을 붙들고 버티던 할머니와 엄마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인민무장경찰과 사투를 벌이는 광경을 생생하게 목격해야 했다.

이 둘이 밖으로 끌려나가고 총영사관 문이 트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진지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던 한미양도 결국 엄마를 따라 문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생사의 희비가 엇갈린 찰나의 시간 일본총영사관 주변에는 미국행 혹은 일본행, 한국행 비자를 받으려는 중국인과 조선족 동포들이 지근거리에 몰려 들어 비참한 광경을 목격했고 영사관 직원들로 보이는 이들도 문 안쪽 1∼2m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성희씨와 경숙씨, 그리고 한미가 일본 총영사관 옆 초소로 거칠게 끌려간 뒤 영사관 안에 무사히 들어가 안도하던 한미 아빠와 삼촌에게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일본 총영사관 직원들과 한동안 무언가 열심히 상의하던 인민무장경찰 2∼3명이 영사관 안으로 뛰어들어간 것.

잠시 후 두 남자도 인민무장경찰에 붙들려 끌려나왔다. 어이없어 하는 두 사람이 영사관 문을 붙들고 버티자 인민무장경찰은 이들을 마구 때리며 나머지 가족 3명이 붙들려 있는 초소로 데리고 들어갔다.

일본 총영사관 직원들과 중국 공안원들의 얘기가 한동안 계속된 가운데 중국 공안 밴차량이 초소 앞으로 다가왔다.

잠시후 오후 3시5분께 절망스런 표정의 탈북가족 5명이 초소 밖으로 끌려나왔고 한미 할머니와 엄마는 저항하며 울부짖고 있었다.

다시 총영사관 앞으로 현지인들이 몰려든 가운데 차량에는 통곡하는 한미양 엄마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한미 아빠 , 삼촌, 할머니 그리고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모르고 어머니 품에 안겨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두살배기 여아가 함께 실렸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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