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북한 양강도 혜산에서 어린 손자와 단둘이 사는 70대 할머니가 식량이 없어 며칠간 굶주리다 손자와 함께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할머니가 남긴 유서에는 “조선 사람들은 이 땅에서 태어난 걸 후회해야 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1일 “유서 내용에 주민들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보위부가 입단속까지 시켰다”고 전했다.

지난 3월 초 양강도 혜산시의 한 골목 시장에서 한 ‘꽃제비’ 아이(왼쪽)가 자리에 앉아 상인들이 파는 음식을 바라보고 있다. /대북소식통 제공
지난 3월 초 양강도 혜산시의 한 골목 시장에서 한 ‘꽃제비’ 아이(왼쪽)가 자리에 앉아 상인들이 파는 음식을 바라보고 있다. /대북소식통 제공

북한은 현재 극심한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 31일 “북한의 옥수수 가격이 지난해 1분기 대비 약 60%, 쌀 가격은 30% 가까이 올라 김정은 집권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며 “이에 따라 아사자 발생도 예년의 3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북한 내 자살자도 지난해 대비 약 40%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농무부가 발간한 ‘세계 식량안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121만t에 달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이 혁명성지로 강조하는 양강도 삼지연군과 보천군에만 ‘절량세대’(식량이 떨어진 세대)가 3만 세대가 넘는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고난의 행군 직전에 등장했던 ‘맨밥에 된장 찍어 먹어도’라는 경제난을 상징하는 표현이 최근 노동신문에 다시 등장했다.

한 소식통은 “식량난으로 많은 가정이 흩어지면서 한동안 눈에 띄지 않던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이 북한 전역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했다. 지방의 고아원은 인원이 넘쳐 꽃제비들을 받을 자리가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북한 당국은 최근 꽃제비와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빈곤세대 구제를 위해 ‘아동보육기금’과 ‘서로돕기기금’을 긴급 조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아사자에 자살자까지 대거 나온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당국이나 장마당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주민들이 희망을 잃고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식량난은 북한의 무리한 군비 증강과 코로나 봉쇄, 사적 식량 거래 금지 등 반시장적인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김정은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에 모든 국력을 집중시키면서 경제난은 가중되고 있다. 북한의 연간 식량 부족분 80만을 해외에서 구입할 경우 약 3647억원이 소요된다. 반면 북한이 지난해 쏜 71발의 탄도미사일 발사 비용은 최대 6890억원(국방연구원 추산)에 달한다. 이춘근 한국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북한 주민들이 먹을 몇 년 치 식량을 하늘에 날려보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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