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무성이 29일 “일본이 변한다면 (북한과 일본의 두 정상이)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지난 2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날 수 있다”고 발언한 지 이틀 만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일본 외교가에서는 예상보다 빠른 북한의 반응에 대해 ‘일본 떠보기’에 불과하다는 시각과 함께 서방 세계와 철저하게 고립된 북한이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일본을 활용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022.11.18/뉴스1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022.11.18/뉴스1

2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박상길 외무성 부상(차관급)은 이날 담화에서 “만일 일본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된 국제적 흐름과 시대에 걸맞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대국적 자세에서 새로운 결단을 내리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려 한다면 조·일(북·일) 두 나라가 서로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공화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일본이 ‘전제 조건 없는 정상회담’을 말하지만, 이미 다 해결된 납치 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운운하며 조일 관계 개선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행동으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북한 외무성의 발언은 기시다 총리가 27일 도쿄에서 열린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국민 대집회’에서 한 발언에 대한 반응이다. 당시 기시다 총리는 “납치 문제는 한시도 느슨하게 대할 수 없는 인권 문제”라며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을 조기 실현하기 위해 북한 측과 총리 직속의 고위급 관료 간 협의를 진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과 북한이 차례로, 대화를 시도하는 듯한 발언을 했지만 현재로선 정상회담 등에 대한 물밑 협상이 오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주변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다만 북한이 ‘전제 조건 없는 만남’을 제안한 기시다 총리를 상대로 돌발적인 ‘미끼’를 던졌을 가능성은 있다. 일본인 납치 문제나 미사일 도발과 같은 의제를 빼고 고위급 회담이 성사되면 일본과 만나도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부터 전례 없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에 대외 통로가 꽉 막히고 고립된 상태다. 일본과의 대화 채널 복구를 미국이나 유럽 국가와의 경색 국면을 타개할 때 지렛대로 쓸 여지도 생긴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균열을 노릴 수도 있다.

일본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서방 세계와 연결된 모든 ‘끈’이 끊긴 북한 입장에선 일본과 대화 채널은 복구해 놓으면 활용도가 높을 것”이라며 “북한은 내부 여론 측면에서도 이런 담화가 김정일·고이즈미 간 ‘평양선언’을 회복하는 시도라는 명분도 있다”고 말했다.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일본 총리가 발표한 ‘평양선언’은 양국의 국교 정상화 추진과 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등 4개 항을 담은 문서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