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평양과 판문점에서 개최된 남북 회담은 물밑에선 도·감청(盜·監聽)과의 전쟁이었다. 숙소인 평양 고려호텔이나 백화원 초대소 등에서는 아예 몰래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호텔 객실이 춥다고 혼잣말로 읊조렸는데도 나갔다 오면 특별 난방이 돌아갔다. 실내 대책 회의는 포장을 치고 필담(筆談)으로 진행해 추적을 뿌리치는 데 필사적이었다. 하이라이트는 평양 회담장과 서울 삼청동 대화사무국 간의 교신 내용을 둘러싼 창(矛)과 방패(盾)의 대결이었다. 보안요원들이 통신 비화기를 사용해 주파수를 수시로 바꿔가며 방어에 나서지만 가끔은 한계를 보이기도 했다. 남북한 정보통신 기술력 간 진검 승부였다.

북한은 국민소득 1000불의 가난이 덕지덕지 내려앉은 체제이지만 해킹과 도·감청 기술은 최첨단 수준이다. 평양 권부는 1990년대 중반부터 미림대학 등에서 10대 수재 학생들을 전문 해킹 프로그래머로 육성하는 군사용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에 주력했다. 최근에만 가상화폐에 대한 국내외 해킹으로 최소 1조원 이상의 자금을 탈취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이 발사한 71발의 미사일 도발의 재원이다. 필자의 학교 이메일은 연간 1~2차례 북한 측 소행으로 추정되는 해킹을 당했다고 국정원의 주의를 받는다. 북한 정찰총국 해킹조직 라자루스의 선관위 해킹 여부를 둘러싸고 국정원과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으나 선관위 역시 국내 통신망의 일부로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 사례
 
북한의 사이버 공격 사례

반면 우리의 대북 통신정보 수집은 갈 길이 멀다.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첨단 정보 수집의 중요성은 절대적이다. 대면 접촉 정보 수집인 휴민트(HUMINT·인적 정보)는 2000년 6·15 정상회담 이후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 휴민트를 중단하였고 이후 중국 공안들의 감시로 동북 3성을 통한 인적 정보 수집은 정보요원이 감금되는 등 한계에 부딪혔다. 한번 무너진 휴민트 네트워크는 좀처럼 복원되지 않았다. 서울의 정권 교체로 한미 공조가 여의치 않을 때에는 국정원과 미 중앙정보국(CIA) 간에 정보 공유가 순탄치 않았다. 핵과 미사일의 최고급 군사정보는 말할 필요도 없고 김정일의 사망, 장성택의 처형과 김정은의 방중(訪中) 등 굵직굵직한 대북 현안에서 좀처럼 우리 첩보망에 적시에 경보가 울리지 않았다.

가끔은 일본 정보 부서가 구축한 거점 협조자들이 훨씬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2010년대 중반 일본의 TV아사히 방송사 등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정보를 사전에 입수해 중국 다롄 등 해안 지역에서 방송 장비를 설치하고 일주일간 기다린 끝에 서해로 날아간 미사일 발사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 8월 광복절 즈음해 심근경색으로 김정일이 쓰러졌으나 초기 일주일간 전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평양 의료진의 치료에 불안을 느낀 수뇌부는 프랑스 당국에 명의(名醫) 지원을 요청하였다. 평양은 뇌 사진을 파리로 보냈고 비밀리에 프랑스 의사들이 정보요원들과 평양에 도착하면서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외부에 노출되었다.

프랑스 정보 당국(DGSE)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 정보 당국이 CIA로부터 프랑스 뇌신경외과 전문가가 평양을 방문했다는 정보를 전달받은 것은 8월 29일이었다. 대북 정보 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안보 부서는 ‘깜깜이 수준’이었다. 미국과의 정보 공조로 겨우 북한 최고지도자의 위중 상태를 파악하였다. 한미 정보 공동체(intelligence eyes)의 중요성을 실감한 순간이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사망 당시의 첩보 수집 능력과 상황도 2008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북한은 김정일 사망 51시간 만에 유고(有故)를 공식 발표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당시와 비교하면 17시간이 더 걸렸다. 평양 기온이 영하 12도를 기록한 날 겨울 아침 특별열차 편으로 현지 지도에 나선 김정일은 심근경색(stroke)으로 사망했다. 12월 18일 새벽 1시 북한 국경 경비대가 두만강과 압록강 국경을 봉쇄했다. 사망 당일 북한이 중국 측에 중대 사건이 일어났음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 하루 뒤 사망 관련 억측을 차단하기 위해 평양은 부검을 실시했다. 조선중앙TV는 “2011년 12월 18일에 진행된 병리 해부 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었다”고 보도했다. 모든 조치들을 마치고 평양은 232명의 장의위원과 영결식 일정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한미 양국의 시긴트(SIGINT·신호 정보, 각종 장비를 활용해 통신·통화 등을 도·감청해 얻은 정보)와 휴민트는 작동하지 않았다. 정보 당국이 김정일 사망을 북한의 공식 발표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국정원장의 국회 증언을 통해 이틀 후에 알려졌다.

과거 정보 실패(intelligence failure) 사례를 장황하게 복기하는 것은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온라인에 유출된 미국 기밀문서에서 CIA가 한국 국가안보실장 주재 회의를 도청한 듯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우리의 대응 능력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행태에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하책(下策)이다. 외교 채널을 통한 유감 표명으로 향후 도청이 중단된 사례는 없다. 도·감청에 대해 모든 국가는 이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는 NCND 입장이다.

동맹국 미국의 ‘친구 도·감청’ 논란은 역설적으로 대북 시긴트 수집의 중요성을 깊이 새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싫든 좋든 남의 은밀한 이야기를 엿듣는 국익 정보전쟁의 시대다. 전 세계 정보기관이 수집하려는 고급 정보는 거의 시긴트에 의존하고 있다. 대북 휴민트를 통한 정보 수집이 벽에 부딪힌 이상 시긴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중국 공안의 거친 단속과 스파이에 대한 강력한 처벌 등으로 북중 국경은 접근 불가다. 북한도 판문점에서 평양까지 광케이블을 구축하여 통신망 보안에 주력하고 있다.

북핵이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평양의 내부 상황과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정보 수집은 필수적이다. 최첨단 보안 기술을 개발해 초격차로 도·감청을 막아내면서도 철저한 준비로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 내부의 방화벽(fire wall)을 튼튼히 하는 동시에 평양의 방화벽은 뚫어야 하는 것은 정보 전쟁의 냉엄한 현실이다. 한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김여정 부부장은 ‘결정적 행동’ 운운하며 다양한 도발에 나설 태세다. 평양의 인사이드 스토리를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할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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