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포로 김성태씨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국군 포로 김성태씨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6·25전쟁 당시 북에 끌려갔다 탈출한 국군 포로 5명이 김정은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재판이 어제 열렸다. 함경도의 탄광 등에서 수십 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며 2020년 9월 소송을 낸 지 31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법정에 출석한 사람은 김성태(91)씨 혼자였다. 3년이 흐르는 동안 원고 3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1명은 거동이 불편해 출석하지 못했다. 소송 대리인 측은 “원고들이 고령임을 감안해 재판을 서둘러 달라고 부탁했지만 재판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재판을 지연시켰다”고 했다.

이번 소송은 한재복씨 등 또 다른 국군 포로 2명이 2020년 7월 유사한 사건에서 승소한 지 두 달 뒤 제기된 것이다. 한씨 사건은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우리 법원이 재판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첫 판결이었다. 이 사건은 소송 시작까지 2년 8개월이 걸렸는데 피고 김정은에게 소장(訴狀)을 전달할 방법을 좀처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변호인단은 소장 내용을 인터넷 등에 공지하면 피고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公示送達)을 요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가까스로 재판이 열릴 수 있었다.

김성태씨 사건도 이를 따랐다면 진작 재판이 시작됐을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무슨 이유인지 재판을 뭉갰다고 한다. 소송 대리인 측은 “공시송달 신청을 3차례, 변론기일 지정 신청을 5차례 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고, 그러는 사이 재판부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권과 김명수 사법부가 북의 눈치를 봤을 수 있다.

1994년 고(故) 조창호 소위의 귀환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총 80명의 국군 포로가 돌아왔다. 대부분 자력 탈출이거나 인권 단체가 도운 경우이고 정부가 주도적으로 구출한 사례는 없다. 오히려 국방부와 외교부는 과거 중국으로 탈출한 국군 포로 구출 노력을 소홀히 했다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생존한 국군 포로는 13명이다. 대부분 90대다. 2020년 승소한 한씨도 지난 2월 숨졌다. 나라를 지키다 포로가 돼 고난을 겪은 이들을 국가가 돕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대우할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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