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열린 유엔 인권 조사위원회(COI) 설립 10주년을 맞이해 열린 '북한 인권운동의 중점 과제와 미래' 세미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2023.3.20/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20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열린 유엔 인권 조사위원회(COI) 설립 10주년을 맞이해 열린 '북한 인권운동의 중점 과제와 미래' 세미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2023.3.20/연합뉴스

김정은 집권 후에도 북한에서 18세 미만 아동과 임산부까지 사형에 처하는 등 광범위하게 사형이 집행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일부가 31일 공개하는 북한이탈주민 508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겼다.

이번 보고서는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발간하는 우리정부의 첫 공개보고서로 2017년 ~ 2022년까지 508명의 탈북민이 경험한 1600개의 인권침해 사례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북한 인권법 제정 7년만으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5년 간 비공개한 보고서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참혹한 실태를 낱낱이 알린다는 방침에 따라 공개를 결정했다.

30일 통일부에 따르면 약 450쪽 분량의 보고서는 ①시민적·정치적 권리 ②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③취약계층 ④정치범수용소·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크게 4개 장으로 구성됐다.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고문 모습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고문 모습

보고서에 따르면 증언에 참여한 탈북민은 여성 53%, 남성 47%였다. 지역은 함경북도·양강도 출신이 76%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이례적으로 평양출신도 11%로 다소 높게 나왔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북한의 국경이 통제됨에 따라 해외파견노동자가 탈북민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졌으며 해외파견 노동자는 평양 출신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북한에서는 공권력에 의한 자의적 생명 박탈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즉결 처형’ 사례에 대한 증언이 지속적으로 수집됐다고 밝혔다. 중한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 마약범죄, 한국영상물 유포, 종교 미신행위 등에도 사형을 부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금시설에서 수형자가 도주하다가 붙잡혀 공개처형되거나 피구금자가 구금시설에서 출산한 아기를 기관원이 살해한 사례도 있었고, 18세 미만 아동과 임산부에게 사형이 집행된 사례들도 수집됐다.

특히 여성들이 가정·학교·군대·구금시설에서 각종 폭력에 노출되고, 청소년이 한국 영상물을 봤다는 이유로 처형되는 일이 있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2015년 원산시에서 16∼17세 청소년 6명이 한국 영상물을 시청하고 아편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받고 곧바로 총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2017년에는 집에서 춤추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시중에 유포됐는데, 당시 임신 6개월인 이 여성은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동작이 문제가 돼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종교·미신행위에 대해서도 사형 등 가혹한 처벌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평양시에서 비밀교회를 운영하던 단체가 일망타진되어 5명은 공개처형 되고 7명은 관리소, 30명은 노동교화형, 가족을 포함한 50여명은 강제추방 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점을 보러 간 주민들은 노동교양처분 3개월을 미신행위자 가운데 7년이 넘는 노동교화형을 받고 엄중한 경우에는 총살까지 할 수 있다는 포고령까지 내려왔고 실제로 미신행위자들이 처형당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2019년에 619연합지휘부가 실시한 미신행위 단속에서 50명가량이 체포되어 평양시에 있는 한 호텔 앞에서 공개재판이 있었는데 한 점쟁이는 노동교화형 5년을 받았고 자체로 약을 제조하여 사람들에게 먹인 무당은 노동교화형 7년을 받았다고 한다. 죽은 시신이 부활할 수 있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한 사이비집단 교주와 성경을 소지하고 기도생활을 한 사람은 사형을 받았다고 한다.

또 구금시설에서 여성 피구금자에 대해 소지품 검사를 위해 나체검사가 시행되고 여성의 질 내부까지 직접 확인하는 체강검사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정치적 사유로, 남한정보 접촉, 마약 밀매 등을 이유로 강제이주 조치도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밖에도 종교행위, 체제비판, 인신매매 등의 다양한 사유로 북한당국에 의해 체포된 후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인 강제실종 사례들도 지속적으로 수집됐다. 강제실종된 사례의 대다수는 생사를 알 수 없었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였다.

특히 김정은의 ‘어린이사랑’으로 포장된 애육원 등 아동보호시설 졸업생의 상당수가 돌격대나 공장노동자로 강제배치 되고 있다는 진술이 수집되고 있어 대학에 진학하거나 희망에 따라 직장배치 된다는 북한의 주장과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의 결혼이나 출산을 제한하고 ‘난쟁이 마을’ 등을 만들어 다른 마을로부터 격리된 곳에서만 거주하도록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정치범수용소 수용민에 대한 처형과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고,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은 감시와 차별에 시달리는 등 심각한 인권 침해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2017년부터 강화된 대북제재로 북중협력과 경제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북제재 이후 북중 경제협력이 종료된 사업장이 늘고 관광객도 거의 오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원유수입량의 제한조치에 따른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연료와 전기 부족으로 광산과 탄광 등의 가동이 멈추게 되고, 소규모 밀거래를 통해 중국에서 정제유를 들여오는 것도 어려워졌으며 휘발유 등의 가격이 상승하여 오토바이 등으로 운송을 하던 주민에게도 영향이 있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국경 지역의 무역회사 폐업도 늘어 지역의 경제가 악화되었다는 다수의 진술도 나왔다.

통일부는 “이번 보고서가 2016년 초당적 협력으로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발간하는 정부의 첫 공개 보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북한인권 분야의 공신력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으로 배포하고 영문판 발간도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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