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15일 ‘자주통일 민중전위(자통)’ 일당을 구속 기소하면서 발표한 중간 수사 결과에는 북한이 2016년 3월부터 최근까지 포섭해 조직한 자통을 통해 국내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려 한 사실이 자세히 담겨 있다. 적화통일을 포기하지 않은 북한이 민노총과 좌파 정당에 자통 조직원을 침투시켜 노조 파업과 반(反)정부, 반미(反美) 활동을 조직화했다는 내용이다. 이들의 공소장은 180장에 이른다고 한다.

◇北 ‘반미’ ‘한일 갈등 조장’ 지령

이날 발표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국내 정치 및 대미(對美) 외교 분야와 관련해 2016년부터 김명성 등 북한 대남 공작 기구인 문화교류국 공작원 7명을 통해 자통에 지령을 내렸다. 지령은 ‘스테가노그라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암호화된 문서로 전달됐다.

북한은 작년 6월 ‘민노총의 노동자 대회 등을 계기로 윤석열 패당을 통치 위기에 몰아넣을 것’이란 지령을 내렸고, 자통 조직원들은 서울 남대문 인근에서 개최된 8·15 자주평화통일대회에 참석해 ‘한미동맹 해체’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고 한다.

또 자통은 작년 10월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을 북에 보고했고 북측은 “윤석열 역적 패당에 대한 불신과 배척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으니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제2의 촛불 국민 대항쟁을 일으키는 데 목표를 두라”는 지령과 함께 ‘지역별 촛불 시위 후 상경단 조직’ ‘쌀값 안정을 위한 농민 투쟁에 촛불 집회 도입’ 등 방안을 하달했다.

이에 앞서 윤 대통령과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작년 5월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러자 북한은 그해 6월 “대북 압박 공조를 구걸하면서 북에 대한 대결 흉심을 드러냈다”면서 “시민 단체 등과 연계한 한미 군사훈련 연습 중단 촛불 집회 등으로 투쟁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에 자통은 ‘외교 참사’ 등의 내용을 담은 카드 뉴스를 만들어 소셜미디어에 배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2021년 5월 한·미·일 협력이 추진되던 시기엔 “일본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한반도에 미칠 재앙을 논증하고, ‘괴물고기 출현’ 등 괴담을 인터넷에 유포할 것” 등 지령도 내렸다.

◇“노동자·농민의 반정부 투쟁 조직화”

국내 노동 문제에 개입하기 위한 지령도 자통에 전달됐다고 한다. 북한은 민노총의 노동자 대회를 한 달 앞둔 작년 6월 “민노총이 7월 중에 단체 총파업, 노동자 결의 대회, 부문별 련쇄(연쇄) 파업과 같은 대규모 집중 투쟁들을 격렬하게 벌여 전반적인 반정부 투쟁을 주도해 나가게 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장기 파업 종료 직후인 작년 8월에는 자통에서 협력업체 파업 상황과 경찰 수사 상황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우조선해양 파업과 관련해 검찰은 현재 자통 경남 남부 지역 책임자이자 민노총 금속노조의 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 지회 부회장인 A(55)씨에 관해 수사 중이다.

북한은 20~30대 젊은 노동자들이 집중된 대기업의 지역 노조원을 포섭하라고도 지시했다. 현 민노총 주력은 50대 이상인데, 세대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또 “농민 운동 단체들의 미국 쌀 수입 문제 등에 대한 투쟁” 지령(2021년 4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통해 일본·호주 등 11국 경제협력체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에 저지하는 반미·반보수 투쟁” 지령(2022년 5월) 등도 내렸다.

◇‘보수 유튜버 고소·고발’ 공작

북한은 조선일보 폐간 운동을 독려하는 지시도 내렸다고 한다. 북한은 2021년 7월 자통에 ‘조선일보 폐간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참가자 수가 30만명을 돌파하고 조선일보 폐간 운동 본부가 조직되고 있다’면서 ‘진보 운동 단체 등을 적극 내세워 여론전 및 내적 활동을 벌여 청와대 국민 청원 참가자 수를 늘리라’고 했다고 한다.

또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에 대해 고소·고발전을 진행하라” “자통 조직원이 보수 유튜브 채널에 들어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댓글·만평을 올려 법적 문제를 일으키는 역공작을 펼칠 것” 등 지령도 보냈다. 진보 진영 유튜브를 구독하게 하거나 자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조직적 활동을 펼치라는 지시도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2014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인 진보당에 자통 활동가들을 침투시키는 방식으로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 하기도 했다. 북한은 2021년 6월 “진보당은 대중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심장을 틀어잡을 수 있는 대표 인물과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서는 그 어떤 부르주아 선거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지령을 내렸다. 자통 관계자들은 진보당의 당직을 맡아 정계 진출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은 대북전단금지법이 시행된 직후인 2021년 5월 대북 전단 활동을 벌여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를 겨냥한 지령도 하달했다. 자통 조직원들은 같은 달 박 대표를 구속하라는 1인 시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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