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경찰이 지난 1~2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민노총 간부들의 사무실·자택·차량 등을 압수 수색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내려보낸 지령문을 대거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북한 지시문은 주요 계기 때마다 하달됐으며 주로 반정부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작년 핼러윈 참사 땐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윤석열 정권 퇴진과 탄핵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투쟁 노선뿐 아니라 ‘이게 나라냐’ ‘국민이 죽어간다’ ‘퇴진이 추모다’ 같은 구체적 투쟁 구호까지 하달했다고 한다. 실제 집회 현장에서 외치거나 이들이 내건 현수막에 그대로 쓰인 문구들이다. 참사 당시 민노총 등은 국민적 애도 분위기를 정치 투쟁의 동력으로 삼으려 했다. 이 ‘재난의 정치화’ 뒤에 북한도 있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민노총 경남본부가 지난달 23일 오전 민노총 건물 앞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민노총 경남본부가 지난달 23일 오전 민노총 건물 앞에서 국정원과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북은 핼러윈 참사 말고도 주요 계기 때마다 지령문을 내려보냈다. 작년 화물연대 파업 당시 하달한 지령문은 ‘모든 통일·애국 세력이 연대해 대중적 분노를 유발시키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국정원과 경찰은 작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장기 파업도 북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간첩단 혐의를 받는 경남 창원의 ‘자주통일 민중전위’가 북의 지시를 받고 민노총 경남 지역 간부들을 포섭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 파업으로 회사와 지역 경제는 큰 피해를 입었다.

국정원과 경찰은 이번 압수 수색을 통해 민노총 간부들이 작성한 대북 충성 맹세문도 여럿 확보했다고 한다. ‘조국통일 위업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겠다’ ‘김정은 원수님을 혁명의 수령으로 높이 받들겠다’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따르겠다’는 등의 내용으로 전해졌다. 김일성 생일, 김정일 생일, 노동당 창건일 등 북이 중시하는 기념일에 맞춰 작성됐다고 한다. 북한은 최악의 실패 집단으로 입증된 지 오래인데도 선진국 한국에 아직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민노총과 이른바 진보단체들은 국정원과 경찰의 수사를 ‘공안 탄압’이라면서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수사 당국이 확보한 북 지령문 중에는 ‘공안 탄압을 내세워 대중적 분노를 유발하라’는 내용도 있다고 한다. 이번 수사가 공안 탄압인지, 북한과 민노총 관계의 진실을 적발한 것인지는 곧 가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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