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부터 3월 3일까지 진행된 민방위훈련에 참여한 북한 주민들이 휴대한 '생화학전 대비 가방' 속에 든 물품. /RFA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3일까지 진행된 민방위훈련에 참여한 북한 주민들이 휴대한 '생화학전 대비 가방' 속에 든 물품. /RFA

북한이 최근 미국의 생화학 공격에 대비한다며 닷새간 민방위 훈련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 주민들은 대피소까지 매일 최대 20㎞를 이동해야 했으며 장마당에서 허술한 전시 대비 키트를 돈 주고 구매했다는 전언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는 지난 6일 함경북도 주민을 인용해 “2월 27일부터 3월 3일까지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지시에 따라 전국적인 범위에서 민방위 훈련이 진행됐다”고 보도했다. 훈련은 각 지역도당 민방위부가 지휘했다. ‘미국의 생화학전에 대비한 전시훈련’이라는 내용이 하달됐다고 한다.

군부대는 전방과 후방으로 나눠 전시대비훈련을, 민간에선 민방위 이동훈련을 동시에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방위 이동훈련은 민방위 동원령이 내려지면 주민들이 아침부터 지역별 대피지로 이동해 훈련에 임하는 것이다. 훈련은 보통 갱도에 들어가 위치를 잡은 뒤 1~2시간이 지나 마무리된다고 한다.

주민 소식통은 “거주지와 대피소까지 거리가 가까운 곳은 20리(8㎞) 먼 곳은 50리(20㎞)에 달해 주민들이 매일 도보로 이동하느라 큰 고생을 했다”고 전했다. 평안북도의 한 간부 소식통도 “지난주 민방위 훈련에는 아이들과 노인들을 제외한 전 주민들이 멀리 지정된 대피지로 이동했다”면서 “이에 가족의 생계가 막막한 일부 주민들은 당국의 훈련지시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침부터 추위 속에서 30~40리 길을 걸어서 대피지까지 이동하느라 많은 사람들이 허리와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고 있다”며 “당국이 미국의 화학전 공격 가능성을 퍼뜨리며 주민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실제로 세계 최강의 첨단 무기를 갖춘 미국이 생화학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고 믿는 주민들은 전쟁 공포감보다는 훈련으로 당하고 있는 고통에 대해 불만이 더 크다”고 했다.

지난 3일 북한 기정동 마을. /연합뉴스
 
지난 3일 북한 기정동 마을. /연합뉴스

또 주민들은 생화학전에 대비한 방호 장비 등을 직접 준비해야 했다. 이 대비 키트는 청진 장마당에서 1.5달러가량에 팔렸는데 북 주민들의 평균 월급에 비하면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한다. RFA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전시 대비키트는 나일론 재질로 보이는 가방 안에 들어있다. 물품은 파란 면 마스크와 검정 보호 안경, 소독약, 비누, 소독 수건, 가재천 등이다.

주민 소식통은 “생화학전쟁에 대비한다면서 나라에서 제공하는 장비는 하나도 없고 모든 생화학전 방호 장비를 주민들이 자체로 마련하라고 하니 이런 엉터리 훈련이 어디있냐”고 했다. 간부 소식통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생화학공격에 대비한다면서 아무 쓸모가 없는 마스크와 보호안경에 덧붙여 백반 50g을 생화학전 소독제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주민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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