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만나고 있다./로이터 뉴스1
 
지난 2월 22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과 만나고 있다./로이터 뉴스1

지난해 11월 영국 더타임스가 ‘러시아의 북한화(North Koreanisation)’란 표현을 내놨다. 우크라이나 침공 장기화로 위기에 처한 푸틴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북한식 사상 통제와 선전·선동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지난 1년 새 비판 언론을 모두 폐간했다. 군과 전쟁에 대한 부정적 언급은 ‘허위 정보 유포’로 최고 15년형에 처하고 있다. 정부와 집권당은 “미국과 서방의 목적은 러시아 파괴”라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조국과 민족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러시아는 실로 여러 면에서 북한을 닮아가고 있다. 최근엔 국제적 고립의 측면에서도 북한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국제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정부 인사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다. 러시아 경제 전체가 국제 금융과 무역 시스템에서 배제되면서 대표 수출품인 원유와 천연가스 판매는 반 토막이 났다. 각종 광물과 철강, 알루미늄 등 원자재 수출 길도 막혔다. 지난 24일의 추가 제재로 제3국을 통한 각종 전략 물자의 우회 수입도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툭하면 ‘핵 위협’에 나서는 것도 서로 닮아가고 있다. 러시아는 전황 악화나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 발표가 나면 어김없이 핵 사용 가능성을 언급한다. 지난 27일엔 “러시아 없는 세상은 필요 없다”며 “모두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는 극언까지 했다. 북한도 내부 동요나 한미 동맹 강화 기조가 보이면 바로 핵 혹은 미사일 과시에 나선다. 이들은 핵무기 사용이 ‘자살 행위’임을 잘 알지만 별 도리가 없다. “나 혼자만 죽지 않겠다”는 무뢰배식 협박 외엔 남은 카드가 없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러시아의 중국 의존도가 북한 못지않게 높아졌다는 것이다. 판로가 막힌 러시아산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 재정의 절반이 에너지 판매 수익이란 점에서, 중국이 러시아의 전쟁 비용을 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방의 원자재와 생필품, 민수용품이 빠진 자리 역시 모두 중국이 메워주고 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떠난 전자·자동차 매장을 몽땅 중국산이 점령했다고 한다.

러시아는 지난 22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칙사 대접했다. 푸틴 대통령 이하 고위 지도자들이 줄줄이 그를 만났고, 중국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중국 지원 없이는 단 며칠도 버티기 힘들어진 러시아의 속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의 중국 종속은 더 심해질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제 무기·경제 지원을 통해 김정은 정권뿐만 아니라 푸틴 대통령의 명운마저 좌우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의 북한화’가 뜻하는 진짜 위험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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