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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北 지하조직, 브라질 대선 불복처럼 봉기할 결정적 순간 기다려”
노석조 기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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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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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북한은 적화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지하조직은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최근 브라질에서도 '대선 불복' 폭동이 일어나 의회·대통령궁·대법원이 점거되는 일이 뉴스로 타전됐다"면서 "절대 벌어져선 안되겠지만,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북한은 적화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지하조직은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최근 브라질에서도 '대선 불복' 폭동이 일어나 의회·대통령궁·대법원이 점거되는 일이 뉴스로 타전됐다"면서 "절대 벌어져선 안되겠지만,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최근 제주·창원 등지에서 ‘ㅎㄱㅎ’ ‘자통’ 같은 이름의 간첩 혐의 조직이 수사망에 걸렸다. 국가정보원은 북한 지하조직이 경남 진주·전북 전주 등 전국 각지에 결성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15일 알려졌다. 1980년대 ‘주사파 대부’로 북한 연계 지하 정당인 ‘민혁당’을 조직했던 김영환(60)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은 적화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지하조직은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이 한국 내 지하조직을 만드는 것은 남·남 갈등 유발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하조직은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결정적인 순간’에 들고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물론 최근 브라질에서도 ‘대선 불복’ 폭동이 일어나 의회·대통령궁·대법원이 점거되는 일이 뉴스로 타전됐다”면서 “절대 벌어져선 안 되겠지만, 한국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지하조직으로 70년간 꾸준히 대남 공작

-아직도 북 추종자·지하조직이 있는데.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지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 사실을 아직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수없이 많은 증거를 보여줘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말도 안 되는 이유와 논리를 대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합리화하려 한다. 자기들이 쳐놓은 세상 안에 갇혀 좀처럼 헤어나오지 않으려 한다. 교주가 못된 짓을 해 감옥에 가거나 죽더라도 계속 추앙한다. 여기에 정치·경제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고 인간관계도 얽히면 더 맹렬히 활동하게 된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는 이들이 있듯이 이들의 말에 넘어가는 사람도 생기는 것이다.”

-북한은 왜 지하조직을 계속 만들고 간첩을 보내나.

“북한식으로 통일을 시키겠다는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다. 포기하지 않았다. 당장 그럴 역량은 없지만, 지하조직을 두고 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언제 어떻게 요긴하게 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한 대남 공작 부서의 역량을 계속 유지한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 대공 수사권이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우리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2016년 공개 행사장에서 중국 조선족이라면서 내게 악수를 청한 사람이 손에 독극물을 바르는 수법으로 나를 암살하려 한 적이 있었다. 국정원과 미 중앙정보국(CIA)이 나중에 그 조선족이 남파된 북한 암살단이라고 알려줬다. 지하조직이 직접 암살 작전을 하진 않더라도 이를 알게 모르게 도와주는 역할은 했을 것이다.”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고운호 기자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고운호 기자

-최근 적발된 간첩 혐의 조직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도 나왔다.

“지하조직은 각종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남·남 갈등을 유발한다. 여론을 왜곡하고 한국의 정치·사회적 토양을 북한에 유리하게 바꾸려 한다. 홍콩이나 대만의 여론이 지금처럼 중국 쪽으로 많이 넘어갈 줄 누가 알았겠나. 중국이 오랫동안 동조 세력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이다. 대선 결과에 불복해 폭동을 일으키거나 의회를 점거하는 일이 미국, 브라질 등에서 벌어졌다는 해외 뉴스도 전해지고 있다. 간과해선 안 된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되지만, 한국에서도 안 일어나라는 법은 없다.”

◇남남갈등 유발·여론 왜곡, 선거에도 개입

-북한은 어떤 지령을 내릴까.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나를 ‘김 동지’라고 부르면서 ‘남조선 혁명과 해방에 혁혁한 공을 세워라. 기대하겠다’고 했다. 그게 지령이었다. 그러면서 공작금으로 40만달러를 줬다. 당시 환율로 3억원이 훌쩍 넘었다. 5급 공무원 월급이 40만원이 채 되지 않을 때였다. 지금으로 치면 30억~40억원 정도일 것이다. 이걸로 민혁당 이끌고 선거 자금에도 썼다.”

-지하조직원들이 선거에 나갔다는 건가.

“그렇다. 당시 북에서 받은 자금으로 1990년대 이상규(전 통합진보당 의원) 등 7~10명 정도 지원했다. 북한이 1995년 지방선거와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 조직원을 후보로 입후보시키고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1990년대 모 지역에 출마한 이른바 ‘인권 변호사’ A씨에게도 직접은 아니지만, 그의 선거 캠프 운동원에게 자금을 준 적이 있다.”

◇통진당 일부 김일성 공작금으로 선거 치러

-얼마씩 지원했나.

“북한이 준 공작금과 조직 자체 수입을 가지고 수백만원씩 줬다. 이에 대해선 2014년 통진당 해산 헌법재판소에서 ‘(통진당 의원인) 이상규·김미희 등에게 1995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500만원씩 하모씨를 통해 지원했다’고 증언도 했다. 이 발언이 허위라며 소송도 당했지만,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통진당 의원과 최고위원 등 일부 당직자들이 민혁당의 당원이거나 하부 조직의 조직원이었다. 그런데 내가 민혁당의 리더였고, 모든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지하조직은 유독 반미 운동에 집중한다.

“한국 체제 전복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일관되게 한국과 미국 사이를 이간질하려 해왔다. 사실 한국 여론을 움직이려면 반중 정서를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거기엔 관심이 없다. 반중 정서는 한국 체제와 별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군사 측면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미국이 있으면 북한이 한국에 마음대로 못 한다. 앞으로도 미국과 한국을 떼어놓으려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김영환씨는 1980년대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강철서신'을 썼다. /고운호 기자
 
김영환 북한 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김영환씨는 1980년대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강철서신'을 썼다. /고운호 기자

-주사파 출신 중 과거를 공개 반성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는.

“그들 일부도 이제는 북한 체제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주사파였던 것을 반성하거나 비판하며 공개적으로 등 돌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주사파들 사이에 금기시되는 게 있다. 후회한다든가 반성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걸 공개적으로 하면 ‘나쁜 놈’ ‘배신자’라고 (저희끼리) 낙인을 찍고 욕한다. 북한 선전 매체가 대놓고 살벌하게 비방한다. 진영 논리에 빠져서 북한 비판하면 반대 진영 돕는 꼴 된다고 ‘북이 싫다’는 말을 못 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에도 경기도 안산에서 한 청년 단체가 ‘친북’ 논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이석기(통진당 사건 주범) 그룹’ ‘경기동부연합’ 영향력이 강한 지역이 안산, 성남 등 경기 동부·남부 지역이다. 이들 세력은 이석기가 나온 대학의 용인 캠퍼스를 중심으로 안산 등으로 퍼졌다. 부모 중에 자녀에게 주사파 사상을 교육해 대물림해주는 경우가 상당하다. 실제로 문제가 된 일부 친북 활동 청년들의 부모가 누군지 봤더니 관련 전력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고 한다. 알기로 경기동부연합의 힘이 가장 센 곳이 성남 지역이라고 한다.”

-제주·창원 등에서 지하조직이 포착돼 수사 중이다.

“수사 진행 사항에 대해 아는 바는 없다. 현재 북 지하조직이 얼마나 퍼져 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번 수사로 어느 정도 밝혀지지 않을까.”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구금된 지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오른쪽) 일행이 2012년 7월 20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김씨는 마중 나온 환영객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조선일보 DB
 
중국에서 국가안전위해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로 구금된 지 114일 만에 풀려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오른쪽) 일행이 2012년 7월 20일 저녁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김씨는 마중 나온 환영객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 보였다./조선일보 DB
◇남매 간첩 연루 프락치, 北 수용소 끌려가

-주사파 대부에서 북 민주화 투사가 됐는데.

“나로 인해 많은 이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주사파에서 벗어났다. 수천 명은 되지 않을까. 원체 당시 주사파가 많았다. 서울대 82학번 동기인 조국(전 법무부 장관)은 솔직히 활동을 제대로 한 게 아니라 운동권이라 보기도 애매하다. 같은 세대였지만 윤미향 의원은 전혀 알고 지내지 않아 그에 대해선 잘 모른다. 학교가 달라서일 수도 있겠다. 다만 그의 남편인 김삼석씨가 ‘남매 간첩’ 사건으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선 알고 있다. 남매 사건과 관련해 자신이 안기부 프락치였다고 밝혔던 영화 제작업자 백흥용씨가 돌연 입북한 것은 북한 매체가 보도했다. 하지만 그가 이후 수용소로 끌려간 사실은 모를 것이다. 그는 독일에서 1996년쯤 자진해 북한에 들어갔다. 그런데 북 체제가 예상과 달라 적응을 못 했는지 해선 안 될 말을 몇 차례 해 결국 수용소에 보내졌다고 한다.”

-북한 인권·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힘든 점은.

“관심이 적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아 아쉽다. 정권에 따라 북 인권 정책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것도 문제다. 그렇다 보니 기업들도 눈치를 본다. 북 인권 활동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볼까 우려해 아예 발을 담그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생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특히 한 동포라면 북한 인권에 대해선 좌우, 진보·보수, 진영 논리를 떠나 모두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김영환

196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 마포고를 나와 1982년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다. 사회주의 혁명 사상에 빠진 뒤 김일성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글 ‘강철 서신’을 썼다. ‘주사파 대부’로 불렸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2년 수감된 뒤 풀려났다. 1989년 남파 간첩에 포섭됐다. 그의 암호명은 ‘관악산 1호’였다. 1991년 북한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2차례 만나 “남조선의 혁명·해방에 공을 세우라”는 지령을 받았다. 그러나 북 정권의 실체에 눈뜨면서 자기 손으로 만든 민혁당을 1997년 해체했다. 이후 북한 인권과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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