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도 외교부-국방부 업무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도 외교부-국방부 업무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한다든지 우리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핵 위협이 더 심각해질 경우’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한국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을 공개 언급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북이 대남 핵 선제 공격을 언급한 데 이어 대남용 전술핵 실전 배치가 임박한 상황에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성역 없이 모든 방안을 다 검토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핵우산은 한국 안보의 기초가 돼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그래야 한다. 그러나 미국 핵우산에만 우리 운명 전체를 맡기고 있기에는 북핵 위협이 너무나 심각한 것 또한 사실이다. 북한은 지금 미국 대도시 2~3곳을 동시에 핵 타격할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이러면 미국은 자국 국민 수백만 명이 희생될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그런 결심을 할 미국 대통령이 있겠느냐는 것은 합리적인 의문이다. 북한이 미국을 핵 공격할 ICBM에 이토록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 효과를 노린 것이다.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도 미국 핵우산 아래에 있지만 오래전부터 자체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과의 핵 공유 체제를 마련해 뒀다. 나토 국가들은 핵 사용 결정에 참여하고 핵 투하도 자국 전투기로 한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에게는 핵을 성역으로 만들고 어떤 접근도 하지 못하게 한다.

한미 동맹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동맹으로 평가되지만 언제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북이 대규모 도발을 벌이면서 핵 공격 협박을 함께 한다면 그 피해와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만 지게 된다. 미국은 휴전 이후 북의 도발에 우리와 함께 싸운 적이 없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등의 북핵 대응 콘퍼런스에서도 ‘미국의 핵우산이 펴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한국도 핵 잠재력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부가 곧바로 핵 개발 계획에 착수하는 것은 물론 아닐 것이다. 윤 대통령은 미국의 핵 자산 운영 과정에 우리가 참여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발언은 미국에 보다 확실한 북핵 억지 수단을 찾을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 무기를 공동으로 기획·실행하는 방안부터 논의해야 한다. 시뮬레이션과 도상 연습, 전투기에 핵무기를 실어 투하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앞으로 나토식 핵 공유 등의 방안도 논의해야 한다.

우리가 자체 핵무장을 해야 하는 상황은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북핵 위협만 없다면 우리가 핵을 가져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북핵 위협이 노골화하고 중국은 이를 방조하는데 미국마저 미온적이면 어떻게 해야 하나. 5100만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존립이 걸린 문제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단기간에 핵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점검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 중국에도 뚜렷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핵은 핵으로만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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