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이 한국을 “의심할 바 없는 명백한 적(敵)”으로 규정하며 “현 상황은 전술핵무기를 다량 생산하고 핵탄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전했다. 올해 한국을 공격할 핵과 탄도미사일 전력을 대폭 증강하겠다고 공언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달 31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3발을 발사한 데 이어 1일 새벽에도 1발을 쐈다. 윤석열 대통령은 1일 합참의장 등과 한 화상 통화에서 “일전 불사 결기로 북한의 도발을 확실히 응징하라”고 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핵 사용을 기도한다면 김정은 정권은 종말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달 31일 직경 600㎜인 초대형 방사포가 당 전원회의에 전달된 행사에 참석해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핵에는 핵으로, 정면 대결에는 정면 대결로’라는 대응 의지를 선언했다”며 한미 군대를 압도할 무기 생산에 분투해야 한다고 했다. 북한은 작년에만 한 해 최다인 70발의 탄도미사일 도발을 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달 31일과 이날 동해상으로 SRBM을 각각 3발과 1발 발사했다. 김정은은 이를 ‘초대형 방사포’라고 하며 “남조선 전역을 사정권에 두고 전술핵 탑재까지 가능한 공격형 무기”라고 했다. 초대형 방사포는 직경 600㎜에 최대 사거리가 400㎞에 이르기 때문에 단거리탄도미사일과 다를 게 없다. 소형화한 전술핵 탄두를 탑재하면 남한 전역을 핵 공격할 수 있다. 다른 탄도미사일과 섞어 쏘면 요격 방법도 마땅치 않다. 북한은 이날 “매우 중요한 공격형 무기를 인민군 부대들에 인도하게 됐다”고 했는데 실전 배치 단계라는 의미다. 김정은이 ‘전술핵’을 강조한 만큼 북한이 전술핵 개발을 위한 7차 핵실험에 나설 수도 있다.
김정은은 “우리의 핵 무력은 전쟁 억제와 평화 수호를 제1의 임무로 간주하지만 실패 시 제2의 사명도 결행하게 될 것”이라며 “제2의 사명은 방어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했다. 한국을 핵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같은 민족을 핵무기로 위협하는 북한 태도에 개탄한다”고 했다. 문근식 경기대 교수는 “북한이 전술핵을 남쪽을 향해 실제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은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체계를 개발하는 데 대한 과업이 제시됐다”고 했다. 이는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신형 ICBM 개발과 ‘지하 격납고’ 건설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기존 ICBM인 화성-15형과 17형은 액체 연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연료 주입에 시간이 걸리고 사전에 징후가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난달 실험한 고체 연료 로켓은 준비 시간 없이 신속하게 쏠 수 있다. 김정은은 정찰위성 개발이 “마감 단계”라며 “단기간 내 첫 군사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도 공언했다. 한국을 정밀 타격하려면 군사위성이 필요한데 북한은 아직 없다.
김정은이 “핵탄 보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라”고 지시한 부분도 주목해야 한다. 핵무기 원료는 원자로 가동을 통한 플루토늄 추출과 원심분리기를 통한 우라늄 농축으로 얻는다. 핵 보유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리려면 원자로를 더 짓거나 원심분리기를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대북 제재가 엄격하게 지켜지면 핵심 장비와 원료 반입이 어렵지만 북한은 30년 넘게 이런 제재를 뚫고 핵을 개발해 왔다. 현재 북한의 보유 핵탄두는 50기 안팎으로 추정된다.
올해 한반도 정세와 관련,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무인기 같은 과거에 보지 못한 도발을 지속할 것이고 남북 간 ‘말 폭탄’이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겼다”고 했다. 올해는 북한이 ‘승리’라고 주장하는 6·25 정전 협정 70주년(7월 27일), 정권 수립 75주년(9월 9일) 같은 행사가 예정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벙커인 국가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김승겸 합참의장 등 군 지휘관들과 통화를 갖고 “북한이 다양한 대칭·비대칭 수단을 동원해 도발에 나설 것”이라며 “확고한 정신적 대비 태세, 실전적 훈련만이 강한 안보를 보장할 수 있다”고 했다. 한·미·일 북핵 수석대표는 31일과 1일 이틀 연속 유선 협의를 갖고 “북한 도발은 강력한 한·미·일 안보 협력과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요미우리신문은 1일 한국과 일본 정부가 북한 미사일을 탐지·추적하는 레이더 정보를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를 경유해 즉시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일이 사후에 정보를 주고받는 현행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보다 진전된 군사 협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