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탈북자가 진입했던 독일대사관은 무장경찰들이 들이닥쳐 철조망을 설치하려 하자 대사관 간부가 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다시 몰려올 가능성이 있어 보안상 철조망을 가설해야 한다’는 주장에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외교단지내 수십개 외국 공관들은 독일대사관처럼 대부분 중국 당국의 사전 통보도 못받은 채 순식간에 철조망에 갇혀버렸다. 특히 노동절 연휴를 맞아 공관 기능이 거의 정지되는 바람에 공관 담장 위의 관할권조차 제대로 따져보지 못했다.
한국대사관 담장 위에도 철조망 3줄이 하얀 햇살 속에 눈부신 빛을 발하고 있다. 철조망이 설치되던 지난 3일 한 대사관 간부는 무장경찰들에게 “허락도 없이 철조망을 치려 하느냐”며 항의하다가 ‘다른 공관에 이미 설치됐다’는 말을 듣고서는 “수고하라”며 순순히 돌아섰다고 했다. 또 다른 대사관 간부는 7일 기자에게 “탈북자 문제는 우리 동포 문제인데 중국이 철조망을 쳐주니 고마운 일 아니냐”고 했다.
한국대사관이 위치한 싼리툰 둥쓰제(東四街)는 요즘 신록(新綠)이 화려하다. 곧게 뻗은 길 옆으로 포플러가 무성하고, 잎새를 뚫고 길바닥에 떨어진 햇살 무늬는 현기증나게 아름답다. 4월 29일 낮, 외국 공관 진입을 시도하던 탈북자 일가족은 이 길을 따라 경찰에 끌려갔다. 40대 가장과 임신 9개월째 만삭의 아내, 그리고 14살 난 작은 딸은 코 앞에 보이는 한국대사관이 자신들보다 철조망을 더 반길 줄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 呂始東·北京특파원 sdye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