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인기들이 26일 김포·강화도 및 서울 일대 영공을 5시간 넘게 침범하고 인천·김포공항 항공기 이착륙 일시 중단까지 초래한 것은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수준을 넘어서는 초유의 도발 양상이다. 휴전 이후 북 무인기 때문에 우리 공항이 일시 마비된 것은 처음이다. 군 당국은 영공을 침범한 북 무인기들에 대해 공격 헬기와 공군 경공격기까지 동원해 사격을 했지만 격추하는 데는 실패해 북 무인기 대응책에 대한 보완 필요성이 제기된다.

군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대낮에 대담하게 무인기 여러 대를 경기도 김포, 강화도 일대 등 전방 지역의 민가가 있는 곳까지 내려보내 정찰 및 무력시위를 한 데 주목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서울 은평구 상공까지 접근했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이 추가 도발을 위해 김포·강화도와 수도권 지역 사진을 찍으며 정찰 활동을 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전에도 북한은 무인기를 띄워 정찰 활동을 했을 것으로 군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당시 북한은 우리 군 시설이 북에서 볼 때 산 뒤쪽에 있어 관측이 어려웠는데도 비교적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해 포격을 가했다. 정보 당국자는 “북이 무인기 등을 통해 공격 좌표를 찍었기 때문에 연평도 군 시설들을 비교적 정확하게 겨냥해 사격했던 것으로 본다”고 했다.

DMZ 지뢰 도발로 긴장 수위가 높아졌던 2015년 8월에도 강원 화천 군사분계선 남쪽 상공을 북 무인기가 여러 차례 침범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고성능 정찰기나 정찰 위성 등이 없기 때문에 공격 좌표를 설정하려면 무인기 등을 이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무인기 5대를 한꺼번에 내려보낸 이유를 분석 중”이라고 했다. 최근 북한은 정찰 위성용 로켓을 발사했다며 수도권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서울 등 수도권을 손바닥처럼 내려다보고 있다는 위협인 셈이다. 북한은 미국제 대공사격 표적기를 개량해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자폭용 무인기’도 대량 보유하고 있다.

북은 최근 정찰 위성용 로켓을 쏜 직후 서울과 수도권을 찍은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해상도가 낮아 ‘조악한 수준’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러자 북한 김여정은 “일회성 시험에 누가 값비싼 고해상도 카메라를 쓰냐”고 반박하며 우리 정부를 막말로 비난했다. 우리 정부는 자체 위성으로 찍은 선명한 평양 김일성 광장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북한이 찍은 서울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해상도가 높았다. 대북 소식통은 “북은 군사 기술적으로 남한에 밀리지 않는다는 자존심이 있다”며 “무인기 촬영을 통해 정찰 역량 측면에서도 한국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수 있다”고 했다. 북이 조만간 이번 영공 침범을 통해 찍은 사진을 공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이 무인기 도발로 우리 허점을 파고든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한미 연합군의 막강한 전력 앞에서 우리 영토를 직접 공격하기는 힘든 만큼 탐지·요격이 어려운 소형 무인기로 우리 군 대비 태세를 시험하고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듯한 모습을 유도하고 싶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북이 한반도 긴장을 지속해서 고조시키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몇 달간 한미 훈련 등을 트집 잡으며 탄도미사일 발사, 해상 완충 구역으로의 포 사격, 전투기를 비롯한 군용기의 대규모 출격 등으로 긴장을 끌어올린 연장선에서 이번 무인기 도발도 저질렀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모든 자산과 방법을 통해서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계속 조성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이어진 9·19 군사합의 무력화의 일환으로도 볼 수 있다. 2018년 체결된 9·19 군사합의에는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서부 지역은 10㎞, 동부 지역은 15㎞ 안에서 무인기 비행이 금지돼 있는데, 북은 이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을 넘어 아예 영공까지 침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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