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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처럼 무기 옮기다 증발?… 러·이란 선박 흑해서 흔적 지우는 수법
이철민 국제 전문기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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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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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개발로 인해 국제사회의 무역 제재를 받는 이란과, 이란으로부터 드론과 미사일을 공급 받는 러시아 화물선들이 위치 추적을 피하려고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끄는 경우가 급증했다고, 선박 추적 웹사이트들과 미 언론이 보도했다.

AIS는 항해 안전과 보안 강화를 위해 해당 선박의 선명ㆍ제원ㆍ속력 등의 정보를 선박들 간에, 또 항만 당국과 자동 송수신하는 항해 장비다. 국제 항해를 하는 300톤 이상의 화물선, 국내 항해를 하는 500 톤 이상의 화물선과 150톤 이상의 여객선은 의무적으로 장착하고 계속 켜놓아야 한다.

길이 138m의 5500톤급 러시아 유조선인 ‘카피탄 슈밀킨(Kapitan Schemilkin)’은 지난 4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을 출항했고, 6일 러시아의 흑해 항구인 노로보시스크에 도착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 구간의 해운(FTBS)은 통상 1~2일 걸린다.

그런데 해상정보 웹사이트인 마린트래픽닷컴(marinetraffic.com)에 따르면, 지난 10일 이 선박은 노보로시스크에서 80㎞ 떨어진 곳에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또다른 웹사이트인 ‘베셀파인더(VesselFinder)’에 따르면, 15일 현재도 비슷한 해역에 있는 것으로 보고돼, 예상 항해 기간을 넘어 1주일 넘게 흑해를 가로지르고 있다는 얘기다.

15일 선박 추적 웹사이트인 '베셀파인더'에 입력된 러시아 유조선 '카피탄 슈밀킨'의 위치. 지난 6일 러시아 흑해 항구 노로보시스크에 입항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아직도 흑해에 떠 있다. 해상 전문가들은 이 선박의 선박위치 발신 정보 자체가 조작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VesselFinder 스크린샷
 
15일 선박 추적 웹사이트인 '베셀파인더'에 입력된 러시아 유조선 '카피탄 슈밀킨'의 위치. 지난 6일 러시아 흑해 항구 노로보시스크에 입항하는 것으로 돼 있으나, 아직도 흑해에 떠 있다. 해상 전문가들은 이 선박의 선박위치 발신 정보 자체가 조작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한다./VesselFinder 스크린샷

이와 관련, 안보ㆍ외교 전문 웹사이트인 포린폴리시는 14일 “카피탄 슈밀킨이 AIS를 조작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박의 AIS 장착은 1989년 3월 알래스카 해안에서 발생한 유조선 액슨 발데즈(Exxon Valdez)호가 좌초되면서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일으킨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미 해안경비대도 이 선박에 대한 정확한 항해 정보가 없어, 유효한 선박 교통 시스템을 제공하지 못했다.

이후 도입된 AIS는 선박들 간에도 붐비는 해로에서 서로 안전 거리를 미리 확보하고, 영해 침범을 예방할 수 있는 필수적인 MMSI(해상이동업무식별부호) 정보를 제공한다.

러시아 유조선 '카피탄 슈밀킨'의 AIS는 지난 5월28일~7월12일, 8월16일~21일 지도에서 빨간 선이 있는 곳에 자신이 있다고 허위 발신했으나, 위성이 그 시점에서 파악한 위치(검은 점)은 달랐다.
 
러시아 유조선 '카피탄 슈밀킨'의 AIS는 지난 5월28일~7월12일, 8월16일~21일 지도에서 빨간 선이 있는 곳에 자신이 있다고 허위 발신했으나, 위성이 그 시점에서 파악한 위치(검은 점)은 달랐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해 불법 무역을 하는 선박들로선 ‘흔적’을 감추고 싶어한다. ‘카피탄 슈밀킨’은 또 다른 선박 추적 전문가들의 조사에서도 올해 1~8월 사이에 6번이나 이 선박이 발신하는 AIS 위치 정보와 실제로는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확인됐다. 카피탄 호 크기의 선박은 위성에서도 포착이 돼, 유럽우주국(ESA)의 센티널-1 위성이 계속 카피탄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지난 11일 “이란이 러시아에 자국산 드론과 미사일을 공급하기 시작한 8월 이래, 카스피해에서 AIS를 끈 정체불명의 화물선들이 부쩍 늘었다”고 보도했다.

해상 정보회사인 ‘로이드 리스트 인젤리전스’사 분석에 따르면, 카스피 해에서 이란을 떠나 러시아로 가는 선박 중에서 AIS가 꺼진 사례는 8월 278건, 9월에는 440건에 달했다는 것이다. AIS 송수신은 악천후나 신호 불량으로 일시적으로 두절될 수 있으나, 이 건수는 30시간 이상 AIS가 꺼진 경우였다.

이란산 무기가 공급되는 해상 루트로 추정되는, 카스피해에서 흑해 사이를 잇는 볼가강과 돈강을 운항하는 러시아 국내 선박들에서도 AIS가 꺼지는 사례가 9,10월에 부쩍 늘었다.
 
이란산 무기가 공급되는 해상 루트로 추정되는, 카스피해에서 흑해 사이를 잇는 볼가강과 돈강을 운항하는 러시아 국내 선박들에서도 AIS가 꺼지는 사례가 9,10월에 부쩍 늘었다.

또 러시아 내에서 돈강ㆍ볼가강을 거쳐 아조프해와 카스피해를 운항하는 선박도 AIS가 불능화된 것이 9월에는 522건, 10월에는 454건이었다. 그 지역에서 지난 1~8월 월평균은 147건이었다.

WSJ는 “이란 화물선이 카스피해에서 AIS를 끄는 일은 전에도 핵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무역 제재를 피하려고 종종 발생했지만, 최근의 급증 사례는 드론ㆍ미사일 수출과 관련된 것”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는 이란에 모두 1700개의 ‘샤헤드-3′ 자폭(自爆) 드론을 주문했다. 우크라이나 군은 10월말 “러시아가 이란제 드론 330개를 발사했고, 이 중 222개가 격추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선박의 위치 조작에 관한 ‘원조(元祖)’는 북한이다. 포린 폴리시는 “AIS는 통상 고유의 해상 전화번호라 할 수 있는 MMSI(해상이동업무식별부호)를 발신하는데, 북한 선박은 AIS를 2개씩 갖고 다니며 바꿔 발신해, 외부에선 같은 배가 2개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밝혔다.

북한의 밀무역 선박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분석가 제임스 번은 포린폴리시에 “북한은 아예 폐선한 선박에서 나온 AIS를 이미 제재 대상에 오른 선박의 AIS로 등록시킨다”며 “위장 간첩이 죽은 사람의 신분증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019년 5월 29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마린트래픽’의 자료를 토대로, “8년 전에 폐선된 한국 선박의 AIS 신호를 발신하는 선박이 2018년 6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인천항과 북한 장산곶, 남포항 등을 7차례 오갔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이 선박의 부품 일부는 중국에서 팔렸다. 그러나 당시 해수부와 해경은 “단순한 GPS 오류일 가능성” “국내 정박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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