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지난 6월 원훈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고 이 글귀가 적힌 원훈석을 다시 세웠다.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이 지난 6월 원훈을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로 복원하고 이 글귀가 적힌 원훈석을 다시 세웠다. /국가정보원

국가정보원의 간부 인사가 마무리됐다. 1급 간부 교체에 3개월, 2·3급 간부 교체에 다시 3개월이 걸렸다. 이번 인사는 대북 감시·정보·방첩 역량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남북 비밀 접촉 등 대북 협상 쪽으로 조직의 역량과 기능이 과도하게 편중됐던 비정상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중용됐던 2·3급 간부 100여 명이 보직을 받지 못한 만큼 내부 저항도 있을 수 있다.

문 정부 시절 국정원은 대북 정보기관이 아니라 남북 대화 기관이었다. 당시 원장은 후보자로 내정되자마자 “평양에 갈 수 있다”고 했고,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현장에선 감격해 눈물까지 흘렸다. 문 정부 국정원은 북이 핵 개발을 계속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국회에 나와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했고, 북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주장했다. 김정은 비위를 맞추는 언행이 난무하는 배경에 국정원이 있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문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대북 정보 역량은 추락했다. 2018년 3월 북한 특별열차가 중국에 들어간 뒤에도 김정은 방중을 확인하지 못할 정도였다.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할 일이다. 국정원이 남북회담 당사자로 나서다 보니 조직 전체가 그 방향으로 변질되며 대북 정보 능력이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문 정부 국정원 수뇌부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당시 월북 정황과 배치되는 첩보 보고서를 무단 삭제한 혐의, 귀순 의사를 밝힌 탈북 어민들의 북송을 서두르기 위해 합동조사를 조기에 종료시킨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도 받고 있다. 국가기관, 그것도 정보기관이 남북 대화 걸림돌 치우기에만 급급했다. 간첩 혐의로 복역한 사람의 글씨로 국정원 원훈을 새기기도 했다. 국정원 자체에 대한 능멸이었다.

문 정부는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도 폐지해 경찰로 넘겼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 수사권 자체를 없앨 수 있나. 대공 수사는 이 기관에서 저 기관으로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십년 경험이 필수적이다. 지금 사실상 대공 수사는 공백 상태나 마찬가지다. 군 방첩 기능도 약화됐고 검찰의 대공수사 기능도 줄어들었다. 3대 대공·방첩 기관이 다 약화된 것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이다. 어느 나라나 정보기관은 안보의 최전선에 있다. 안보를 위협하는 적의 동향을 탐지해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 임무다. 남북 대화는 통일부의 업무다. 하지만 북한은 통일부를 배제하고 국정원만 상대하려 한다. 거기에 한국 정권들이 호응했다. 국정원이 변질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이 바라는 바다. 국정원 내부에도 남북대화 세력이 뿌리를 내렸다. 국정원을 남북 대화 창구가 아니라 대북 정보기관으로 정상화하고 어떤 정권이 오든 이 원칙만은 허물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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