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아내와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6·25전쟁에서 전사한 고(故) 강농원 일병의 유해가 71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들 강한표씨는 “어머니가 남편을 그리워하다 10년 전에 돌아가셨다”면서 “그 모습을 생각하니 목이 멘다”고 말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6일 “지난 2020년 6월 강원도 인제군 덕적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강농원 일병으로 최근 확인했다”고 밝혔다. 유해 발굴 당시 육군 3포병여단 장병이 기초 발굴 과정에서 오른쪽 허벅지 뼈 일부를 처음 식별한 데 이어 국유단의 전문 발굴 인력이 수습에 나서 최초 발견 지역에서 10m 떨어진 곳에서 척추뼈 등 유해 6점을 추가로 찾았다. 유해 주변에서 M1 탄두 등 유품 3점도 함께 발견됐으나 그것만으로는 신원을 특정하기에 부족했다. 이후 유해의 유전자 분석 결과 2009년에 유전자 정보가 확보된 강한표씨와 가족 관계로 추정돼 정밀 분석을 거쳐 부자 관계가 확인됐다. 한표씨는 친지 권유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했기에 아버지의 유해를 찾을 수 있었다.

고인은 인천시 옹진군에서 6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부친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가족을 부양했다. 스무 살에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고인은 한표씨가 세 살이었던 1951년 3월 국군 3사단 23연대에 입대했다. 남은 가족은 국군 일가라는 이유로 북한군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는 등 갖은 고초를 겼었다. 고인은 강원도 인제군에서 1951년 4월 21일부터 5월 15일까지 전개된 ‘한석산·가리봉 전투’에서 전사했다.

한석산·가리봉 전투는 중공군의 공세 속에 벌어진 전투다. 국군 3사단이 북한군을 격파하면서 고지와 능선을 차례로 탈환했고 인제~원통 도로와 주변 저지대를 통제할 수 있는 한석산을 점령해 동부전선의 방어선을 견고히 하는 데 성공했지만 강 일병은 입대한 지 석 달이 채 안 돼 이곳에서 전사했다. 아버지를 찾았다는 소식에 한표씨는 “나의 생이 다하기 전에 아버지를 찾아서 다행이다”라고 밝혔다. 2000년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된 이래 강 일병을 포함해 호국 영웅 202명의 신원이 확인돼 가족의 품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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