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운데)와 황준국 주유엔 대사(왼쪽 끝) 등이 21일(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 밖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미국의 적대와 한미 연합 훈련 탓”이라고 감싸면서 아무 성과 없이 1시간 30분 만에 종료됐다. /AP 연합뉴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운데)와 황준국 주유엔 대사(왼쪽 끝) 등이 21일(현지 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가 끝난 뒤 회의장 밖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미국의 적대와 한미 연합 훈련 탓”이라고 감싸면서 아무 성과 없이 1시간 30분 만에 종료됐다. /AP 연합뉴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문제를 논의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21일(현지 시각) 열렸지만 성과 없이 종료됐다. 중국·러시아가 과거 자신들도 찬성했던 대북 제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한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미국의 ‘적대’와 한미 연합 훈련 탓”이라며 북한을 두둔했기 때문이다. 한·미·일은 장외 공동성명을 발표해 북한의 도발을 규탄했고 “안보리 외 독자 제재 조치를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김여정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과 추종세력의 망동이자 엄중한 정치적 도발”이라며 “끝까지 초강경 대응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날 안보리 회의는 북한 미사일 발사와 관련해 올해 들어서만 10번째 열리는 공개회의였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이사국들은 북한의 ICBM 발사를 규탄하며 추가 도발 자제와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황준국 주유엔 대사는 “우리는 북한이 핵무기 증강을 위해 안보리의 무대응과 분열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안보리가 북한의 ICBM 발사를 목격하며 독자적 결의안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가장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북한이 연초부터 각종 탄도미사일을 63차례 발사하며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지만 안보리가 매번 ‘빈손’으로 끝난 점을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도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했다. 장쥔 중국 대사는 “미국을 비롯한 당사국들이 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대북 제재를 완화하는 등 실용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책임을 미국 정부에 돌렸다. 약 5분 동안 발언하면서 북한에 자제를 촉구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미국의 적대적 활동을 중단하라는 북한의 거듭된 요구를 일관되게 무시해 온 서방 국가들에 대해 깊이 유감스럽다”며 “지금 일어나는 일은 제재, 무력 강요를 통해 북한을 무장 해제시키려는 미국의 열망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핵·미사일 개발이 한미에 맞선 ‘자위적 조치’라는 북한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장쥔 대사는 “북한의 정당한 우려(legitimate concern)에 긍정적으로 답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결국 회의는 아무런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채 약 1시간 30분 만에 종료됐다. 현 안보리 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한국, 일본 등 14국이 회의장 밖에서 장외 규탄 성명을 내는 데 그쳤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 대사는 “중국과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가 북한을 더 대담하게 만들고 두 나라의 노골적인 방해가 동북아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했다. 미 측이 “의장 성명을 제안할 것”이라 했지만 구속력이 없고 이마저도 중·러가 반대할 가능성이 커 채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미 테리 미 우드로윌슨센터 국장은 “유엔의 거듭된 실패는 모든 지정학적 환경이 북한에 우호적임을 보여주고 있다”며 “김정은이 7차 핵실험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북한 김여정은 이날 한·미·일이 주도한 장외 성명에 대해 “심기가 불편한 미국이 오합지졸 무리들을 거느리고 나와 듣기에도 역겨운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미국과 남조선이 벌려 놓은 군사 연습, 과욕적 무력 증강을 외면하고 우리의 불가침적 자위권 행사를 거론한 것은 명백한 이중 기준”이라며 “적대 행위에 집념하면 할수록 치명적 안보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김여정 직접 담화는 3개월 만이다.

이런 가운데 한·미·일 외교 차관은 안보리 종료 후 통화를 갖고 “안보리와 별도로 개별적 추가 조치를 검토·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중·러로 인해 안보리가 사실상 식물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한·미·일이 독자 제재를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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