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기존에 국정(國定)으로 발행하다 내년부터 검정(檢定)으로 바뀌는 초등학교 5~6학년 사회 교과서에 ‘수정·보완 권고’를 내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수립을 ‘정권’ 수립 등으로 바꾸는 등 문제 되는 내용 상당수가 수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각 출판사가 교육부 권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14일 본지 취재에 따르면, 교육부는 10월 초 전문 연구진으로 구성된 ‘교과서 자문위원회’를 꾸려 내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학교 현장에서 사용할 5~6학년 교과서들을 다시 검토한 후, 그 결과를 바탕으로 검정 교과서를 낸 출판사 9곳 모두에 ‘수정·보완 권고문’을 보냈다. 앞서 초등 교과서 11종 중 ‘자유민주’를 쓴 건 2곳에 그치는 등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인 바 있다<본지 9월 5일 자 A1면>.

대표적인 수정 사항으로는, 지학사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에 등장하는 ‘북한이 1948년 9월에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의 수립을 알리면서’라는 표현이다. 지학사 출판사는 이 표현 중 ‘정부’ 용어를 ‘정권’으로 바꾸기로 했다. “‘국제연합(UN)이 대한민국 정부를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한 사실을 명시하진 못하더라도, 그 내용을 맥락적으로 담고 있어야 한다”는 자문 위원 의견을 따른 결정이다. 해당 교과서 집필진도 이 수정안을 받아들였다.

6학년 1학기 비상 교과서에 ‘시민들이 사회 공동의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방식’ 중에 한 예시로 적혀 있던 ‘촛불집회’는 ‘집회’로 바뀐다. 동아출판사 5학년 2학기 사회 교과서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다루는 부분에 김구의 주장을 담은 말풍선만이 표기돼 있었으나 김구와 이승만의 주장 모두를 넣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다. 균형 잡힌 교육을 위해선 둘 다의 주장을 싣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천재교육은 5학년 1학기 사회 교과서에 나와 있던 ‘모든 국민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때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할 의무가 있다’는 문구를 삭제하기로 했다. 개인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재산에 대해 공공복리를 고려하는 게 ‘의무’라고 보기엔 어렵고, 초등학생들에게 재산권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자문위원들의 우려를 반영했다.

6학년 2학기 교학사 교과서엔 ‘남북 분단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부분에서 한 아이가 해안가에 불이 나는 장면을 TV로 보면서 ‘저러다 전쟁이라도 나면 어쩌지?’라고 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이 삽화 자막으로 “속보 북한군, 연평도에 포격”이라는 자막을 넣기로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과서 11종 중 연평도 포격을 언급한 건 지학사와 교학사 2곳뿐이다.

교육과정에 변화가 없더라도 교과서는 오탈자나 내용 오류 등을 바로잡기 위해 매년 수정된다. 하지만 이번처럼 교육부가 검정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를 학교 학생들이 배우기 전부터 다시 검토해 고치도록 한 건 이례적이다. 다만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와 ‘한반도 유일 합법 정부’ 등 기존에 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빠진 일부 표현을 추가로 반영하진 못했다. 이번 검정 교과서들은 과거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집필했는데, 이 교육과정엔 해당 표현들이 나와 있지 않아 교과서 집필자에 따라 아예 다루지 않을 수 있게 돼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과정에 없는 특정 용어나 사건을 넣고 빼는 건 검정 교과서 집필진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교육부가 강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집필진과 무관하게 특정 용어, 사건, 표현 등이 검정 교과서에 포함되도록 하려면 교육과정에 명시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2026년부터 사용되는 사회 교과서의 바탕이 될 교육과정을 만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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