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이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승겸 합참의장. /국회사진기자단
 
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이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승겸 합참의장. /국회사진기자단

북한 선박 1척이 24일 새벽 서해 북방한계선(NLL) 3.3㎞ 이남까지 침범해 우리 해군 함정이 대응 사격에 나서고 공군 전투기가 출격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졌다. 북이 탄도미사일, 전투기 등 도발에 이어 중국 당 대회 직후 NLL을 공략하며 도발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는 것이다. 북 선박의 NLL 침범은 2017년 1월 이후 5년 9개월 만이다. 북한이 NLL 무력화를 시도하면서 서해 국지 도발 등을 위한 ‘명분’을 쌓기 위해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합참은 이날 “오전 3시 42분 북한 선박 1척이 서해 백령도 서북방(약 27㎞)에서 NLL을 침범해, 우리 해군 함정이 2차례에 걸쳐 경고 통신을 했다”면서 “그래도 항로를 변경하지 않아 군은 M60 기관총을 이용한 경고 사격을 1·2차에 걸쳐 10발씩 총 20발 가했다”고 밝혔다. 북 선박은 오전 4시 20분 NLL 이북으로 올라갔지만, 북한은 이어 오전 5시 14분 황해남도 장산곶 일대에서 서해 NLL 북방 해상완충구역으로 10발의 방사포탄 사격을 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NLL 침범에 이어 완충구역 내 사격으로 9·19 군사 합의를 또다시 위반한 것이다.

북한 총참모부는 이날 남측 호위함이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을 침범해 경고 사격을 한 것이라며 책임을 우리 측에 돌렸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의 정당한 북 선박 퇴거 조치에 북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방사포 위협 사격을 가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총참모부 발표가 바로 이어졌다”면서 “사전 각본에 따른 계획적 도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육·해·공군은 미군·해양경찰과 함께 이날부터 나흘간의 대규모 서해 합동 훈련에 돌입했다.

24일 새벽 이뤄진 북한 선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은 표류로 인한 ‘월선’이 아니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의 사전 승인 없이 북한 상선이 새벽에 NLL을 침범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의도적으로 NLL을 침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 선박은 우리 해군의 2차례 경고 통신을 듣고도 항로를 바꾸지 않고 백령도 서북방 27㎞ 지점인 NLL 이남 3.3㎞까지 넘어왔다. 오전 3시 42분부터 오전 4시 20분까지 약 40분간 머물렀다.

 

침범 선박은 약 5000t급 벌크선 외형이었으며 선박명은 ‘무포호’인 것으로 알려졌다. 무포호는 1991년 9월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시리아로 향하다가 미국·이스라엘 등의 감시에 걸려 미사일을 인도하지 못한 채 귀항한 배와 명칭이 같다. 북한은 침범 선박이 ‘상선’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위장 선박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북한 상선의 선원은 사실상 해군으로 봐야 한다”며 “기관 고장 등이 아닌데 NLL을 3㎞ 이상 남하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군은 북 선박의 NLL 침범에 즉각 호위함 등 함정 수 척을 출동시켰고, 공군 KF-16 등 초계 전력과 해병대 합동 전력을 동원해 대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우리 함정은 무포호에 1㎞ 거리까지 근접했으며, 북한 측은 ‘북측 해역에 접근하지 말라’는 취지의 통신을 보냈다고 한다. 무포호 대응에는 지난해 전력화한 대구급(2800t급) 신형 호위함을 비롯해 인근에 대기하고 있던 고속정 등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상선은 우리 측 경고 사격을 받고 일단 퇴각했지만 북한 도발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1시간쯤 뒤인 오전 5시 14분 황해남도 장산곶 일대에서 서해 NLL 북방 해상완충구역으로 방사포탄 10발을 사격했다. 북한군 총참모부는 남측 호위함이 ‘선박 단속’을 구실로 백령도 서북쪽 20㎞ 해상에서 자신들의 해상군사분계선을 2.5∼5㎞ 침범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해상군사분계선은 NLL 남쪽으로 최대 6㎞ 거리에 있다. 북한군이 이날 우리 함정이 이 수역으로 진입해 사격했다는 주장이다. 남북이 NLL을 놓고 기관총 사격과 방사포 도발을 주고받은 데 이어 성명전까지 벌인 것이다.

북한 상선의 NLL 침범부터 북한군 방사포 사격, 북한군 총참모부 발표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황은 시나리오에 따른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군 안팎의 판단이다. 최근 북은 서해 인근에서 해안포와 방사포 등을 쏘며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0년 북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저지를 때도 해안포 도발과 NLL 침범 등으로 고강도 도발의 명분을 쌓았다. 남주홍 전 국정원 차장은 “북한이 2010년 천안함 폭침을 감행했을 때와 비슷한 정세”라면서 “당시 민주당이 정권을 잃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북한은 천안함 폭침에 이어 연평도 포격, 2015년 박근혜 정부 땐 목함 지뢰 도발도 일으켰다”고 말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최근 북한 도발을 보면, 육·해·공을 넘나들며 다양할 도발을 벌이고 있다”면서 “성동격서식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을 공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은 시진핑 3연임을 확정하는 중국 당 대회 기간엔 도발을 자제했다. 중국의 눈치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중국 정치 행사가 마무리된 만큼 서해 국지 도발이나 7차 핵실험 등으로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려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북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미국과 핵 관련 훈련을 하는 등 우리가 더 관여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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