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뉴스1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뉴스1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17일 미 의회가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관련 “한미 공동의 이익과 목적을 침해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며 “한국 기업들도 장기적으로 기업 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한국에 무엇을 기대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미 동맹은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적인 역할”이라고 했다. 또 “북한 문제는 여전히 우선 순위(top priority)”라면서도 “대화를 거부하는 한 협상의 여지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 “美 공장 설립 전 IRA 우려 해결 논의 중”

지난 5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이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취임 100일을 맞은 골드버그 대사는 이날 김지윤 전 아산정책연구원 여론계량분석센터장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지윤의 지식PLAY’ 채널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IRA 통과에 따른 한국산 전기차 보조금 차별 문제가 한미 간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골드버그 대사는 “법안의 진정한 의도는 녹색 경제에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탄소 배출을 감축해 기후 변화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라며 “결코 한국 기업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전기차 관련 세금 공제 등 몇 가지 단기적 이슈가 있고 그 부분에 대해 한국과 논의하며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 내 생산 공장을 설립하기 전 한국이 갖고 있는 우려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논의 중”이라고 했는데, 중간 선거 이후 IRA 개정 또는 한국·일본 등 우방국에 대한 유예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차는 미 조지아주(州) 서배너에 2025년 완공을 목표로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을 짓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조지아주가 지역구인 래피얼 워녹 연방 상원의원이 IRA 관련 현대차를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항 적용을 유예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ct)’ 같은 파격적인 지원을 앞세워 인텔, 마이크론 등 유수 반도체 기업의 국내 생산을 유도하고 있는 것 관련 “반도체는 21세기의 석유라는 말도 있고 매우 중요한 국가 안보 문제로 다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한국·미국·일본·대만 간 반도체 협의체인 이른바 ‘칩4′를 언급하며 “4개 국가는 민주 진영 내 반도체 생산의 절대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며 “우방국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중차대한 공급망과 국가안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 “中, 대만에 무력 사용하면 치명적 실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연합뉴스

골드버그 대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미·중 경쟁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국제 정세에 대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정부 사이의 분열”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미국은 규범(rule)에 기반해 움직이는 세계를 바라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권위주의 국가에 맞서 잘못과 무책임한 행동을 지적하고, 또 중재와 협상의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내년에 70주년을 맞는 한미동맹 관련 “불확실성이 가득한 시대에 한미 협력관계가 더 많은 분야로 확장되고 이전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두 국가가 더 많은 어젠다를 공유할 때 관계가 발전할거라고 본다”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중국 지도부가 최근 대만에 대한 ‘무력 통일’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만해협에서 긴장이 고 조되고 있는 가운데, 골드버그 대사는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한다면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 국가 의전 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연방 하원의장이 올해 8월 대만을 방문한 것에 대해서도 “우리의 대만 정책은 변함이 없는데 중국이 지나치게 과민 반응해 역내 긴장감이 고조됐다”고 했다.

골드버그 대사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침공 능력을 갖추는 것과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다르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이어 ‘충돌이 현실화하면 미국은 한국에 무슨 역할을 기대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두 국가의 초점은 한반도에 맞춰져 있고, 그것이 한국과 미국이 지금까지 지켜온 약속이고 우선적 역할”이라고 했다. 미 조야(朝野)에서 최근 제기되고 있는 ‘유사시 주한미군 대만 투입설’에 대해서는 일단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 “퀴어 축제 연설은 소수자 인권 존중 메시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올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가 올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해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골드버그 대사는 부임 직후인 올해 7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에 참석했다. 단순히 퍼레이드에만 참석했던 전임 마크 리퍼트, 해리 해리스 대사 등과 달리 마이크를 잡고 연설까지해 특히 주목받았다. 골드버그 대사는 “저 말고도 10명이 넘는 유럽의 대사들 모두 연설했고 제 연설 자체가 특별하다고 볼 수 없다”며 “미국이 모든 이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외교 정책에서는 가치도 중요하고, 우리가 소수자 인권에 얼마나 진지한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지 한국이 사법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한다 전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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