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4일 5년 만에 일본 상공을 넘겨 화성-12형으로 추정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한 것은 괌 등 태평양상 미 전략 목표물 타격 능력과 ‘선제 핵 공격’ 능력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지난달 ‘선제 핵 타격’을 법제화한 이른바 ‘핵무력 정책법’을 발표한 뒤 지난 1일 국군의 날까지 일주일 동안 네 차례에 걸쳐 7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며 한국에 대한 핵 타격 능력을 과시했었다.

북한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장면.
 
북한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장면.

이날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은 정상 각도(30~45도)로 발사돼 최대 고도 970㎞로 4500여㎞를 날아가 미 아시아·태평양 전략 거점인 괌 타격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여줬다. 북한에서 괌까지 거리는 약 3500㎞다. 북 미사일은 하와이에서 3160㎞, 알래스카에서 3300여㎞ 떨어진 태평양상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500여㎞는 지금까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중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간 것이다.

화성-12형은 지난 2017년에도 두 차례 정상 각도로 발사됐으며 일본 열도를 넘어 각각 2700㎞, 3700㎞를 비행한 적이 있다. 화성-12형의 최대 사거리가 4500~5000㎞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이번에 최대 사거리로 시험 발사한 것이다. 최대 사거리를 포함한 정상 각도 발사는 북한 중장거리 미사일의 ‘마지막 관문’으로 평가돼온 대기권 재진입 시험을 실제 했다는 의미도 있다. 고각 발사는 최대 비행거리는 시험할 수 있지만 대기권 진입 각도가 정상 발사와 달라 초고열을 견뎌야 하는 재진입 시험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은 재진입 성공 여부를 확인할 능력이 부족한 만큼 미국의 첨단 감시 자산이 최종 판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지난 1월에 이어 중국 국경에서 불과 40여km 떨어진 자강도 무평리에서 화성-12형을 쏜 것도 주목 대상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유사시 한미 연합군의 공습이 어려운 북중 국경 지역에 중장거리 미사일들을 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성-12형은 ‘괌 타격 미사일’로 알려져 있는데, 괌은 미 B-1, B-52, B-2 등 전략폭격기 삼총사가 배치돼 한반도로 출동하는 전략 거점이다. 이날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유사시 미 증원 전력을 견제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장면./노동신문
뉴스1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장면./노동신문 뉴스1

전문가들은 북이 한국, 일본, 괌을 겨냥한 다양한 핵탄두 탑재 미사일 능력을 증강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안보 부서 당국자는 “북은 ‘핵 선제 타격’을 법제화한 이후 실제 한국, 일본, 괌에 대한 선제 타격이 가능하도록 단거리 미사일에 이어 중거리 미사일도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으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넣는 ICBM과 소형화, 경량화한 전술핵 시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박원곤 교수는 “오늘 북 미사일 발사는 핵능력 고도화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향후 ICBM,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7차 핵실험 등으로 연계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국방부도 이날 국방위 업무 보고에서 “북한이 핵실험 가능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신형 액체추진 ICBM과 SLBM 시험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북한이 영변 원자로 등 주요 핵시설을 정상 가동하는 등 핵능력 고도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2017년 '화성 12형' 발사 지켜보는 김정은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 북한은 4일에도 화성-12형으로 추정되는 IRBM 한 발을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태평양을 향해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17년 '화성 12형' 발사 지켜보는 김정은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7년 9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형'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모습. 북한은 4일에도 화성-12형으로 추정되는 IRBM 한 발을 자강도 무평리 일대에서 태평양을 향해 발사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이종섭 국방장관은 국감에서 ‘북한이 핵실험 준비를 완료한 시기가 언제냐’는 야당 의원 질의에 “올해 5월쯤”이라며 “그러나 (핵실험 시기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7차 핵실험은 “(실제로) 사용하기 위한 소형 (핵무기)일 수도 있고, (6차 핵실험 때보다) 더 위력이 큰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7차 핵실험 시기는 오는 16일 시작되는 중국 공산당 20차 당대회가 마무리되는 이달 말부터 내달 7일 미국 중간선거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많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바이든 대통령 등 미 행정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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