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74번째 정권 수립일(9·9절)을 하루 앞둔 8일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핵 사용의 구체적 조건과 원칙을 법으로 명시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지휘부가 공격받을 경우 자동으로 핵 타격을 가하도록 규정하는 등 핵 사용 관련 문턱을 대폭 낮춘 5대 조건을 법제화한 것이다. 최근 북은 실전에서 쓸 수 있도록 폭발력을 낮춘 ‘전술핵’을 개발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노리는 목적은 핵을 내려놓게 하고 자위권 행사력까지 포기하게 만들어 우리 정권을 어느 때든 붕괴시켜 버리자는 것”이라며 “그 어떤 환경에 처한다 해도 우리로서는 절대로 핵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은 이번 회의에서 핵 지휘권과 사용 조건 등을 명시한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란 법령을 처음 채택했다. ‘핵무력은 김정은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는 대원칙과 함께 핵무기 사용의 5대 조건을 규정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 공격, 국가 지도부나 핵무력 지휘 기구에 대한 핵 및 비핵(非核) 공격, 중요 전략적 대상들에 대한 치명적인 군사적 공격 등이 감행됐거나 임박한 경우, 유사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작전상 필요 제기, 기타 국가 존립과 인민 생명 안전에 파국적 위기를 초래한 경우 등 5가지 조건에서 핵무기 대응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김정은은 “우리 핵을 놓고 더는 흥정할 수 없게 불퇴의 선을 그어 놓은 중대한 의의가 있다”며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해 놓음으로써 핵 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 지위가 불가역적인 것으로 됐다”고 했다. 안보 부서 당국자는 북핵 사용 법제화에 대해 “가장 급진적이고 공세적인 핵 독트린(doctrine)”이라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도 “핵을 보유한 나라 중 선제 타격을 법에 명시한 곳은 북한이 유일할 것”이라며 “공격적인 핵 운용을 하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입장은 확고하다”며 “대화와 외교를 통한 총체적 접근을 흔들림 없이 취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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