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일어난 ‘귀순 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어민들의 귀순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 북송을 지시한 ‘윗선’을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는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어민들의 자필 귀순의향서의 존재가 확인된 데 이어 전날 통일부가 북송 당시 격렬히 저항하던 어민들 사진을 공개하는 등 “귀순 의사가 전혀 없었다”던 문재인 정부의 주장이 거짓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문재인 정부가 어민들의 귀순 의사를 왜곡·조작하며 북송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직권남용, 증거인멸, 허위 공문서 작성 등 위법 행위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귀순 어민 강제 북송 관련 일지
 
귀순 어민 강제 북송 관련 일지

검찰 수사는 일단 서훈 전 국정원장 등을 향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이 국정원을 압수 수색한 것도 강제 북송 당시 서 전 원장 등의 개입을 확인하는 차원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지난 6일 서 전 원장을 고발하면서 “강제 북송 사건 당시 합동 조사를 강제로 조기 종료시킨 혐의”라고 밝혔다. 합동 조사가 사흘 만에 종료된 배경엔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조사를 최대한 빨리 끝내라’는 취지의 서 전 원장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검찰은 당시 귀순 어민들을 조사한 합동조사단 내부에서 ‘이들이 동료 선원들을 살해했다는 혐의에 대해 검찰·경찰의 강제 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윗선’의 지시로 묵살된 정황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조단은 검경 수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문구를 보고서 초안에 포함했으나 최종본에서 삭제됐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지난 6일 서 전 원장을 고발하며 거론한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가 이와 관련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지시로 국정원이 보고서를 수정했을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정의용 전 외교부 장관이었다. 앞서 국가안보실은 작년 국회에 제출한 문건에서 “합동 정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국가안보실과 관련 부처가 협의해 추방했다”고 밝혔다.

北인권·탈북단체 "강제 북송은 반인륜적 범죄"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사단법인 물망초를 비롯한 북한 인권 단체, 탈북 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9년 11월 있었던 탈북 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살인마 문재인을 고발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드리는 3만 탈북자의 호소문’을 통해“이 사건은 반인륜적 범죄”라며“정부가 이에 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北인권·탈북단체 "강제 북송은 반인륜적 범죄" -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사단법인 물망초를 비롯한 북한 인권 단체, 탈북 단체 회원들이 지난 2019년 11월 있었던 탈북 어민 북송 사건과 관련해“살인마 문재인을 고발한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드리는 3만 탈북자의 호소문’을 통해“이 사건은 반인륜적 범죄”라며“정부가 이에 관한 철저한 조사와 책임자 처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외교·안보 분야 주요 결정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다.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의 개입 여부가 검찰 수사의 쟁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연철 당시 통일부 장관은 강제 북송 보름 뒤(2019년 11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간담회 직후 ‘강제 북송 결정을 누가 내렸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외교·안보 쪽은 (대통령이) 보고를 받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고 해석되는 대목이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부산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송부한 날(11월 5일) 북측에 귀순 어민 인계 의사도 전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김정은 답방’이 명시된 이후 문재인 정부는 ‘김정은 답방’에 총력을 기울이던 상황이었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부산 초청이 무산된 뒤에도 “김정은 위원장 답방 여건이 하루빨리 갖춰지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하자”(2020년 1월 신년사)고 하는 등 김정은 답방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검찰은 이날 국정원 압수 수색에서 박지원 전 국정원장의 ‘서해 공무원 피살 진상 은폐’ 의혹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 관계자는 “메인 서버가 있는 공간에 검사나 수사관이 들어갈 수 없다”면서 “검사가 영장을 보면서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국정원 직원들이 하나씩 넘겨주는 방식으로 압수 수색이 진행됐다”고 했다. 박 전 원장은 2020년 9월 서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군에 ‘대한민국 공무원이다. 구조해달라’는 취지로 말하는 감청 내용이 담긴 첩보 보고서의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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