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준씨의 배우자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준씨의 배우자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이씨의 아들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쓴 편지를 대독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해양경찰이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피해자 이대준씨가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후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부터 한 후 뒤늦게 전문가에게 이씨의 심리 감정을 의뢰한 사실이 밝혀졌다.

하태경 국민의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진상 조사 태스크포스(TF)’ 위원장 측이 21일 공개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에 따르면 2020년 10월 22일 간담회에서 이씨의 월북 이유 중 하나로 ‘정신적 공황 상태’를 들었던 해경은 다음날인 10월 23일 전문가에게 이씨의 심리 감정을 의뢰했다.

앞서 이씨 유족 측은 “해경이 근거 없이 정신적 공황 상태를 언급해 유족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인권위에 제소했다. 인권위는 자체 조사 등을 거쳐 2021년 7월 7일 ‘해양경찰청 수사 발표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 결정문을 내놨다.

해경 실무자는 인권위 측에 “사건 초기 실종자의 정신 상태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인터뷰하고 취합하는 일을 맡았다. 주로 전화로 인터뷰를 했고, 차후에 필요하면 서면을 요청해 받는 것으로 진행했다”라며 “해양경찰청 수사발표도 있었고 언론에서 피해자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수차례 도박을 하였다는 보도가 있어서 전문가들이 피해자의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기초해 의견을 주었고, 정신적 공황상태라는 표현은 전문가 자문의견에 따라 사용했다. 당시 보고 자료에 이러한 경위에 대해 작성했던 것 같은데, 정보보고 자료의 경우 열람 후 바로 파기를 해서 현재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 측은 결정문에서 “2020년 10월 23일 전문가 3명에게 고인의 심리상태 진단을 의뢰했다는 2020년 10월 25일자 내사기록으로 보건대, 2020년 10월 22일 3차 중간 수사 발표 당시 참고한 것이 위 전문가들의 자문의견인지 의문이 든다”라며 “위 자문의견에 따랐다 하더라도 고도의 도박중독 상태라는 의견은 1명이었고, 다른 2명의 전문가는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제한된 정보만으로 도박장애 여부를 진단하는 것은 어렵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했다”라고 했다.

또 인권위 측은 “위 내사기록에 첨부되어 있는 작성일자 불상의 2페이지 분량의 ‘인터넷 도박 중독에 따른 월북가능성 자문결과’에 따르면 ‘실종 직전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의 의견이 확인되나, ‘정신적으로 공황상태’라는 표현을 사용한 전문가는 7명 중에 1명이었다”라며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전화로 의견을 청취했다는 참고인의 진술로 보건대 충분한 자료와 정보를 제공받은 상태에서 고인의 행동에 미친 여러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신뢰할 수 있을 정도의 자문의견으로 보기는 어렵다. 나아가 동일한 전문가가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자문의견을 냈던 점 등으로 볼 때, 3차 발표 당시 해양경찰청에서 참고했다는 자문의견이 객관적이거나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의 것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한편 해수부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어업지도원 이대준씨는 2020년 9월 서해상 표류 중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뒤 시신이 불태워졌다.

당시 군 당국과 해경은 이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하다 변을 당했다고 발표했으나 16일 국방부와 해양경찰은 ‘자진 월북 근거가 없다’라고 기존 입장을 번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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