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이 16일 서해에서 북한에 피살된 우리 공무원 사건에 관한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이 16일 서해에서 북한에 피살된 우리 공무원 사건에 관한 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경과 국방부가 서해에서 북한군에 사살·소각된 우리 공무원에 대해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년 전 ‘도박 빚 등에 몰려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던 문재인 정부의 발표를 뒤집은 것이다. 해경은 “유족에게 위로의 말씀”, 국방부는 “국민께 혼선을 드렸다”고 사과했다.

당시 해경은 동료 선원들이 “월북 가능성 없다”고 일치된 진술을 했는데도 월북으로 몰고 갔다. 동료는 “밀물로 (조류가) 동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고 했다. 실종 지점 인근 어민은 “당시 물살이 매우 빠르고 추워서 물에 들어가면 (오래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공무원이 수영을 잘하지 못했고, 평소 북에 대해 말한 적도 없다는 가족과 동료 진술도 있었다. 그런데도 해경은 공무원의 통장을 뒤지고 가족 관계와 사생활을 집중적으로 캤다. 실종 바다와 공무원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월북’을 부인했는데도 채무 내용과 도박 정황을 범죄 일람표처럼 공개하며 “월북 판단”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 국방부는 “북이 우리 국민에게 총격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북이 시신 소각을 부인하자 “소각은 추정”이라고 말을 바꿨다. 그러다 이번에 다시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2년 전 군의 감청 기록이 ‘월북 증거’라고 해놓고 이번엔 “월북을 입증할 수 없다”고 뒤집었다. 정권에 따라 오락가락할 일인가. 공무원의 고3 아들은 월북자 가족이라는 낙인에 육사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 아들에게조차 ‘월북 증거’가 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들은 문 전 대통령에게 “아빠가 잔인하게 죽음을 당할 때 이 나라가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는 편지를 썼다. 문 전 대통령은 “진실을 밝혀내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거꾸로 행동했다. 문 정부는 유족의 정보 공개 요청을 거부하더니 법원이 공개하라고 판결하자 불복해 항소했다. 유족은 미국 대통령과 유엔에 ‘진실을 밝혀달라’는 탄원서를 보내야 했다.

국민이 살해된 직후 문 전 대통령은 사전 녹화한 유엔 연설에서 ‘종전 선언’을 강조했다. 김정은이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자 민주당은 ‘북한 규탄 결의안’ 대신 ‘종전 선언·관광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김정은은 계몽 군주”라고까지 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에 불참하고 아카펠라 공연을 보더니 “북한 사과는 이례적”이라고 했다. 그다음 날 해경의 “월북 판단” 발표가 나왔다. 북이 조난당한 우리 국민을 사살하고 불태웠다면 반북(反北) 여론이 커졌을 것이다. 그래서 참극 당한 국민을 월북자로 몰아간 것 아닌가.

공무원은 북한군에 억류된 이후 6시간 동안 살아 있었다.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된 이후에도 3시간 생존했다. 생명이 꺼져가는 국민을 구하기 위해 무슨 보고와 지시가 오갔고 군 통수권자는 왜 잠을 잤는지 전부 밝혀져야 한다. “월북 판단”을 서두른 이유도 규명해야 한다. 그런데 관련 자료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15년 이상 공개가 어렵다고 한다. 이렇게 덮일 수 없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