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와 관련해 “월북했다고 단정할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16일 밝혔다. “월북으로 추정된다”던 정부 판단을 약 2년 만에 번복한 것이다. 당시 우리 군이 획득한 첩보에 따르면 북한군이 AK 소총을 의미하는 “762″를 언급하는 등 사살 정황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월북 의사를 밝힌 민간인에 대해 북한이 왜 총살 지시를 내렸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정부의 이날 발표로 진상 규명을 위한 첫 단추가 채워졌고 유족들의 명예도 일부 회복됐지만, 문재인 정부 청와대 자료 다수가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된 탓에 관련 정보의 추가 공개가 숙제로 남게 됐다. 대통령실은 “유가족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충분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발표 등에 근거해 피격 공무원의 월북 등 여러 가능성을 두고 종합적인 수사를 진행했으나 월북 의도를 인정할 만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방부도 보도 자료를 내고 “해경의 수사 종결과 연계해 관련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한 결과 실종 공무원의 자진 월북을 입증할 수 없으며,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운 정황이 있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날 해경과 국방부 발표는 ‘자진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던 기존 입장을 1년 9개월 만에 뒤집은 것이다. 사건 발생 초기 해경은 세 차례나 기자회견을 열어 일관되게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현실 도피를 위해 월북했다”고 발표했다. 실종 당시 신발(슬리퍼)이 선상에 남겨진 점, 구명조끼를 착용한 점, 3억원이 넘는 채무에 시달려왔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국방부도 ‘북한 통신 신호 및 감청 정보 등 첩보를 분석했다’며 같은 입장이었다. 해경과 국방부는 이날 “섣불리 월북으로 추정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년 전과 다른 발표를 한 이유가 정권의 대북 기조 때문이냐는 질문에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고 했다.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과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오른쪽)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각각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과 추가 설명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월북으로 판단한 잘못이 있었다는 사과의 의미가 담긴 인사를하고 있다. / News1
 
박상춘 인천해양경찰서장과 윤형진 국방부 국방정책실 정책기획과장(오른쪽)이 16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 인천해양경찰서에서 각각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최종 수사 결과 브리핑과 추가 설명을 마친 뒤 취재진을 향해 월북으로 판단한 잘못이 있었다는 사과의 의미가 담긴 인사를하고 있다. / News1

정부가 이날 “월북이라 단정할 수 없다”고 했지만 월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관련 자료는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당시 군 당국과 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가 국가안보실에 보고한 내용 같은 핵심 자료 대부분이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과 함께 최장 15년간 비공개되는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취임 전에 이관돼서 내용뿐만 아니라 목록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라고 했다. 열람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데 여소야대 지형을 감안하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우리 군은 사건 당시 북한군 내부 보고 과정과 대화 내용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법원은 이 같은 군 특수 정보(SI)에 대해 이미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공개를 불허한 바 있다. 다만 군 소식통 등에 따르면, 당시 획득한 첩보에 “762로 하라” “예? 정말 762로 하란 말입니까”라는 북한군 교신 내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62′는 북한군이 사용하는 AK 소총 7.62mm를 뜻한다. 당시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첩보 내용에 사살, 사격 같은 용어가 없었고 군이 실시간으로 현장을 들여다보는 수준이 아니었다”고 했는데 ‘762′라는 말을 통해 북한이 이씨를 사살하려 했다는 상황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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