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가 2020년 ‘천안함 폭침(爆沈) 사건’이 재조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이인람 진상규명위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미국 등 5국 전문가 74명이 참여한 민군합동조사단은 2010년 ‘천안함이 북한 어뢰 공격으로 폭침됐다’는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진상규명위는 이 최종 조사 결과 대신 ‘내부보다는 외부 폭발의 가능성이 높다’는 당시 민군합동조사단의 중간 조사 결과를 재조사 검토 보고서에 기재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 소행’이란 명확한 사실을 누락하고 ‘좌초’ 등 외부 충격이 천안함 사고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식의 보고서를 만들어 재조사 결정의 근거로 활용했다는 지적이다.

서해수호의날을 앞두고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 천안함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천안함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서해수호의날을 앞두고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 천안함 전시관에서 관람객들이 천안함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29일 감사원의 ‘천안함 재조사 과정 감사 결과’에 따르면,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해온 신상철씨는 2020년 9월 7일 진상규명위에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재조사해달라는 진정을 냈다. 진상규명위 사무국은 보름쯤 뒤 ‘천안함 사건은 그 원인이 명확해 재조사 대상이 안 된다’며 진정을 각하했다. 그러자 신씨는 그해 10월 14일 이 위원회 A국장에게 ‘진정을 받아달라’고 했고, A국장은 당시 이인람 위원장에게 이를 전달했다. 이에 이 전 위원장은 ‘신씨의 진정을 받아주라’고 지시해 실제 접수가 됐다. 감사원은 “진상규명위에서 진정이 반려됐다가 다시 접수된 건 천안함 사건이 유일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임명한 이 전 위원장은 민변 출신이다.

이때부터 진상규명위는 ‘천안함 재조사’ 결론을 정해 놓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억지 논리를 동원하는 작업을 벌였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우선 신씨는 ‘진정인’ 자격이 없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위원회는 신씨가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위원 출신이란 점을 부각해 그의 진정인 자격을 인정했지만 관련 법엔 군 사망 사고를 직접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의 증언을 들어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만 사고 원인 재조사 진정을 낼 수 있다. 감사원은 “신씨가 천안함 관련 ‘특별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사정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감사원은 또 천안함 사건 자체가 재조사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관련 법에 ‘군 사망 사고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을 때’ 재조사를 하게 돼 있는데, 민군합동조사단 뿐만 아니라 법원도 ‘천안함은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게 충분히 증명됐고, 신씨의 좌초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확하게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상규명위는 이런 사실을 검토 보고서에 넣지도 않고, ‘군 사망 사고 재조사 진정은 대체로 받아주는 것이 관행’이라는 이유를 대며 재조사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이 전 위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당시 위원회 상임위원 등이 ‘접수 처리를 하라’는 식으로 말해서 그렇게 하는 게 맞겠다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위 실무자들은 감사원 조사 때 “이 위원장을 설득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재조사 의견으로 검토 보고서를 올렸다”고 진술했다. 재조사 결정으로 천안함 유족들이 반발하자 위원회는 지난해 다시 이 사건 진정을 각하했고 이 전 위원장은 사퇴했다. 현재 이 사건은 경찰이 수사 중이기도 하다. 법조계에선 “위법한 천안함 재조사 지시를 내린 윗선은 직권 남용 소지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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