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장이 12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조선중앙TV 뉴시스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장이 12일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에서 열린 '북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8차 정치국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조선중앙TV 뉴시스

북한이 12일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모든 시·군을 완전 봉쇄하는 ‘최대 비상 방역체계’ 이행을 선언했다. 북한은 이날 새벽 김정은 국무위원장 주재로 긴급 개최한 노동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에서 “2020년 2월부터 오늘에 이르는 2년 3개월에 걸쳐 굳건히 지켜온 우리의 비상방역 전선에 파공(구멍)이 생기는 국가 최중대 비상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북한이 선언한 ‘최대비상 방역체계’는 북·중 국경을 봉쇄하고 주민·물자의 이동에 제한을 가하던 기존의 방역 대책을 뛰어넘는 극단적 방역 조치로 추정된다.

이날 정치국 발표에 따르면, 북한 방역 당국은 지난 8일 평양의 모 단체 소속 발열자들로부터 채취한 검체에서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 BA.2를 검출했다. BA.2는 기존 오미크론 변이(BA.1)보다 전파력이 30~50% 강해 ‘스텔스 오미크론’으로 불린다. 특히 북한은 이날 회의에서 “전국적인 전파 상황이 통보됐다”고 밝혀 코로나 확산세가 평양에 국한된 게 아니라 북한 전역에서 창궐하는 상황임을 시사했다.

마스크 쓰고 나타난 김정은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마스크를 쓴 채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김정은의 모습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이날 새벽 긴급 소집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최초로 인정하고, 모든 시·군을 완전 봉쇄하는‘최대 비상 방역체계’이행을 선언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마스크 쓰고 나타난 김정은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2일 마스크를 쓴 채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김정은의 모습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은 이날 새벽 긴급 소집된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을 최초로 인정하고, 모든 시·군을 완전 봉쇄하는‘최대 비상 방역체계’이행을 선언했다. /조선중앙TV 연합뉴스

이번 오미크론 확산은 지난달 이어진 대형 정치 행사들이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달 김일성 생일 110주년(4월 15일)과 항일 빨치산 결성 90주년(4월 25일) 등을 치르며 군중 시위, 무도회, 체육대회, 인민예술축전, 열병식 등 각종 행사에 전국적으로 주민 수백만명을 동원했다. 이 행사들은 모두 ‘노 마스크’로 치러졌다. 이 과정에서 스텔스 오미크론이 평양을 시작으로 전국에 급속 확산했고, 잠복기를 거쳐 이달부터 확진자가 속출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4일 전국에 외출 금지령을 내렸다가 하루 만에 해제한 데 이어 지난 10일부터 다시 주민들의 외출을 막고 있다.

◇급박한 북, 새벽 2시 넘어 회의

북한이 공개한 정치국 회의 사진을 보면, 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은 뒤에 걸린 벽시계는 2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전날 밤 또는 이날 새벽 확진자 발생 보고를 접한 김정은이 즉각 정치국 회의 소집을 지시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평소와 달리 자정 이후 평양에서 통신량이 급증한 정황이 있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이 정치국회의를 위해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 회의실에 입장할때 벽시계(화살표)가 1시 56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다./조선중앙TV
 
북한 김정은이 정치국회의를 위해 노동당 중앙위 본부청사 회의실에 입장할때 벽시계(화살표)가 1시 56분 정도를 가리키고 있다./조선중앙TV

이번 정치국 회의 소집과 보도는 같은 날 이뤄졌다. 경호상의 이유로 1호 행사(김정은 참석 행사)를 통상 하루나 이틀 뒤 보도하는 관례를 깬 것으로, 북한 당국의 급박한 상황 인식을 뒷받침한다. 그만큼 오미크론 확산세와 이에 따른 주민 동요가 심상치 않다는 얘기다. 이날 노동신문은 오전 9시 30분이 돼서야 발행됐다. 신문 1면에 정치국 회의 결과를 담기 위해 전 주민이 보는 노동당 기관지 발행을 평소보다 4시간이나 늦춘 것이다.

◇김정은 “전국 시·군 봉쇄하라”

김정은은 이날 정치국 회의에서 “악성 전염병의 전파 근원을 차단·소멸시키라”며 “전국의 모든 시·군들에서 자기 지역을 철저히 봉쇄하고 사업 단위, 생산 단위, 생활 단위별로 격폐(隔閉·차단)한 상태에서 사업과 생산 활동을 조직하여 악성 비루스(바이러스)의 전파 공간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상하이를 한 달 넘게 봉쇄하는 등 극단적 ‘제로 코로나’ 방역을 고집하는 중국 공산당 방식을 북한 전역에 적용하라는 것이다.

북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지난달 평양 아동백화점에서 코로나 살균·소독 작업을 하는 모습. 북한은 12일 코로나 확진자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모든 시·군을 완전 봉쇄하는 ‘최대 비상 방역체계’ 이행을 선언했다./AFP 연합뉴스
 
북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이 지난달 평양 아동백화점에서 코로나 살균·소독 작업을 하는 모습. 북한은 12일 코로나 확진자 발생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모든 시·군을 완전 봉쇄하는 ‘최대 비상 방역체계’ 이행을 선언했다./AFP 연합뉴스

앞서 북한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만 2년간 고강도 봉쇄 정책을 고수하다가 올 초 북·중 화물열차 운행을 재개하는 등 방역을 일부 완화한 상태였다. 하지만 지난달 중국 내 코로나 확산에 대응해 열차 운행을 중단하는 등 방역의 고삐를 다시 조였고, 이번 오미크론 발생을 계기로 작년 수준을 뛰어넘는 ‘전국 완전 봉쇄’ 기조를 한동안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은? 인도 지원 계기 되나

북한 내 오미크론 확산이 최근 북한의 고강도 무력 시위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전망이다. 북이 이날 오후 단거리미사일 3발을 동해상으로 난사한 것도 “국방력 강화와 방역은 별개”라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으로 풀이됐다.

북한 내 오미크론 확산은 윤석열 정부의 초기 대북 정책 기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과의 강대강 대치 국면을 조성해온 북한 내부에서 예상치 못한 인도 협력의 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장은 철저한 봉쇄 기조를 이어가겠지만 백신·치료제 지원 등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 오후 단거리 탄도미사일 3발을 연속 발사하면서 이 같은 관측을 무색하게 했다. 전직 통일부 관리는 “방역 문제를 외세의 도움이 아닌 자체 역량으로 해결하겠단 의지를 보이기 위해 예정에 없던 무력 시위를 벌인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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