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이 다가오면서 평양과 서울·워싱턴 간의 샅바싸움이 본격화됐다. 과거 보수정부 출범 당시와 다른 점은 핵무기의 전면 등장이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달 열병식에서 육성으로 ‘선제 핵사용’을 선언했다. ‘국가의 근본이익 침탈’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핵사용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핵 독트린(?)을 발표했다. 핵을 전쟁방지라는 방어용 입장에서 공격용으로 전환해 사용 문턱을 낮추었다. 윤 당선인은 외신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할 경우를 가정해 ‘대북 투자 활성화’, ‘기술 관련 중요 정보 제공’을 밝혔다. 하지만 김정은은 비핵화 요구에 화답하는 대신 ‘핵 선제사용’ 선언과 올해 14번째, 15번째 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

지난  4월 25일 진행된 조선인민군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노동신문 뉴스1
 
지난 4월 25일 진행된 조선인민군창건 90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의 공격용 핵무기 사용 발언은 핵이 대외정책의 제1수단이라는 점을 선언한 것이다. 총 6차례 실험 때마다 국제사회의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내걸었던 ‘비핵화가 김일성의 유훈’이라는 위장막을 걷어냈다. 해발 2200m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만탑산 지하 2번 혹은 3번 암반갱도에서 이미 핵실험 준비를 끝냈다. 7차 핵실험은 이달 20일 바이든 대통령 방한 전후가 D-day 가 될 것이다. 변수는 제재 해제를 위한 대미 압박 타이밍이다. 중·러를 등에 업은 북한은 동유럽까지 전선이 확대된 미국을 압박해 대북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최적 시점 포착에 고심 중이다.

핵탄두 소형화를 겨냥한 7차 핵실험은 한반도 안보의 레드라인이 아닌 마지노선의 붕괴를 의미한다. 북핵은 남한의 3축 미사일 방어체계를 우회하는 비대칭적 무기다.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탑재할 경우 수도권까지 전술핵 사정권에 들어온다. 우리 군은 핵미사일 공격에 대응해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유사시 핵·미사일 시설을 선제 타격하는 ‘킬체인(Kill Chain)’과 ‘대량 응징보복(KMPR)’ 전력을 갖춘다는 계획이지만 핵폭탄의 위력을 고려할 때 반격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재래식 무기 수 천개가 핵무기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는 극단적인 현상이 핵무기의 ‘비대칭성(asymmetry)’이다. 2006년 1차 핵실험을 시작으로 이전의 5차례 핵실험은 다단계 프로세스의 플루토늄 방식인 데 반해 2017년 6차 핵실험은 농축 기술에 의한 우라늄 대량생산 방식으로 이뤄졌다. 핵무기 양산 체제의 길목에 들어섰다. 국방연구원은 2026년 북한 핵탄두는 최대 232개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7차 핵실험은 잠수함발사미사일(SLBM), 소형 다탄두 괴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다양한 투발 수단을 활용하는 실전 배치로 우리 목을 죌 것이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다. 한반도 안보의 희망이 사라지고 온갖 재앙이 닥치는 모양새다. 지정학적으로 ‘낀 국가(pivot state)’인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국제정치에 핵 도미노 게임의 서막을 열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가뜩이나 비상상태인 대만은 물론 중국의 대만 침공이 원려(遠慮, 장기적 근심)가 아닌 근우(近憂, 단기적 근심)라고 고심하는 일본 역시 피폭 국가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핵 보유 담론에 고심할 것이다.

북한 핵개발 일지
 
북한 핵개발 일지

한국인의 열망이나 거부감에 상관없이 핵무기가 남북관계 전면에 등장할 경우 남북한은 물론 주변국 간의 갈등은 과거와 다른 양상이 벌어진다. 진보 계층에서는 핵의 실전 배치라는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고 7차 핵실험 전후가 비슷하다며 태연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 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라고 연설했다. 문 대통령은 재임 5년간 추진한 평화가 핵무기에 매달린 위험한 평화라는 사실은 망각했다. 중국과 인도, 인도와 파키스탄 등 국경을 맞댄 핵무장 국가들은 상호간에 ‘공포의 균형(balance of horror)’을 이뤘다. 남북관계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국가 간의 특수한 갑을 관계가 형성됐다.

미국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CCGA)가 지난해 12월 한국 성인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71%가 핵무장을 지지했다. 미국 다트머스대의 제니퍼 린드, 대릴 프레스 두 교수는 지난해 10월 워싱턴포스트에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어야 할까?”란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부부 교수인 두 전문가는 ‘자국의 지상 이익을 위태롭게 하는 비상사태시 핵확산방지조약(NPT)을 탈퇴할 수 있다’는 NPT 10조를 근거로 한국의 핵 보유가 합법적이고 정당화될 수 있다고 봤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식 핵 공유에 미국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남는 선택지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라고 미국 교수들조차 판단했다.

하지만 한국의 핵 개발은 간단치 않다. 한국은 핵 개발 트라우마가 있다.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 개발 의욕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무력화시킨 과거는 미·소 냉전시대의 스토리이니 과감하게 생략한다. 지난 2000년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 실험실에서 진행한 연구 차원의 우라늄 분리 실험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를 야기했다. 외신들은 “한국이 핵 개발에 나섰다”며 연일 대서특필했다. 수 개월간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던 남핵 파동은 IAEA 이사회가 ‘이 사건과 관련된 핵물질이 유의미한 양이 아니며 현재까지 실험이 없었고 한국의 시정조치와 사찰 협조를 환영한다’는 의장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당시는 북핵 실험 이전이었고 핵 개발이 금기시되었지만 2022년에는 북핵이 다양한 투발 수단과 함께 실전 배치되면서 한반도 안보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바이든 방한 시에 한미 공동의 우라늄 농축생산 설비 구축을 위해 원자력협정 개정도 논의가 필요하다. 급변한 세상에 맞는 정교한 로드맵이 필수적이다. 학계와 언론의 담론 전개부터 시작돼야 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 지는 미지수다. 다만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이를 앞당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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