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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중국의 아바타로 전락한 북한, 미국의 우방으로 변신한 베트남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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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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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윤의 슬픈 중국: 대륙의 자유인들 <18회>

<“중국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했다!” 2014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벌어진 베트남인들의 반중 시위. 남중국해 베트남 경제수역에서 중국이 원유를 시추하자 전 세계에서 베트남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사진/flicker.com>
 
<“중국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했다!” 2014년 5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벌어진 베트남인들의 반중 시위. 남중국해 베트남 경제수역에서 중국이 원유를 시추하자 전 세계에서 베트남인들이 시위를 벌였다. 사진/flicker.com>

북한, 중국의 재가 없이 독자적으로 미사일 쏘았을까?

전 세계가 한국 대선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자유벨트의 전략적 요충지로 남느냐, 친중 국가로 전락하느냐의 기로이기 때문이다. “3불 정책 고수”냐, “사드 추가배치”냐, 그것이 바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할 양자택일의 문제가 되었다.

2022년 1월에만 북한은 일곱 번이나 중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올림픽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베이징의 재가 없이 평양이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쏠 수는 없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대(對)중국 의존도를 높인다. 중국이 송유관을 닫으면 북한은 즉시 무너지기에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사전 조율된 북·중 양국의 군사작전이라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최근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가 점잖게 지적했듯, 동맹국으로서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자산(asset)이기 때문이다.

북한과 달리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인도차이나의 대표적인 친미(親美) 국가로 거듭 났다. 북한이 베트남 방식의 개혁개방으로 미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될 때,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 전략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중국은 어떻게든 북한을 내세워 한반도의 군사긴장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전력을 한반도에 묶어놔야만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다.

6.25전쟁 이래 북·중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에 비유해왔지만, 중국 특유의 거드름에 불과하다. 현재 중국이 직면한 외교·안보적 현실은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마비될 듯 아픈 순망심통(脣亡心痛)의 상황이다. 중국은 북한을 반미·반일의 전초기지로 유지시켜야만 하는 군사전략적 필요가 있다. 북한은 중국을 믿고 “벼랑 끝 전술”을 펼치며 짐짓 천방지축 날뛰어 왔다. 예나 지금이나 북한은 중국에 빌붙어 사는 중화대륙의 “리틀 브라더(little brother)”이기 때문이다.

<1961년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접견. 사진/ 공공부문>
 
<1961년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접견. 사진/ 공공부문>

중국은 북한을 반미 전초기지로, 북한은 중국 믿고 벼랑 끝 전술

천안함 폭침 후 어수선하던 2010년 여름 상하이에서 중국인구사 연구로 유명한 한 중국인 학자가 연구실 칠판에 지도를 그려가면서 내게 설명했다.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북조선은 중국이 건국 직후에 미국과 전쟁을 해서 힘겹게 지킨 나라다.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 중국 측 사상자 수가 92만 명에 달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미국이 절대로 한국을 포기하지 않듯이 중국도 북조선을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동의하자 그는 신이 나서 얘기를 이어갔다.

“또한 중국은 북조선이 베트남처럼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렇게 되면 북조선과 한국의 체제가 비슷해져서 한반도 통일의 가능성이 커질뿐더러 결국 미국의 영향권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중국은 앞으로도 북한이 반미 국가로 남아 있도록 유도하는 양면 정책을 펼칠 것이다.”

잠시 후 함께 식사를 할 때 그가 덧붙였다.

“한국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북조선은 우리 중국인들이 목숨을 걸고 미제와 싸워서 구한 혈맹이자 사상적 동반자이다. 북조선이 미국에 맞부딪히며 싸울 때마다 중국인들은 희열을 느낀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북조선의 반미 투쟁에 열렬히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12년이 지나 돌아보니 당시 그 중국 교수의 예측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북한은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무장에 몰두하는 극단적 쇄국주의로 일관해 왔다. 평양은 북한 체제의 근본적 취약성 때문에 문호를 열 수가 없다. 베이징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에 맞서 북한을 반미의 진지로 남겨두려 한다. 요컨대 북한의 핵무장은 평양과 베이징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림  <2019년 11월 11일, 호주, 일본, 미국의 군함들이 필리핀 해역에서 공동 해상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wiki commons>
 
그림 <2019년 11월 11일, 호주, 일본, 미국의 군함들이 필리핀 해역에서 공동 해상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 wiki commons>

베트남의 반전, 인도-태평양 ‘반중(反中) 벨트’ 전선에

중국 역시 겉으로는 한반도의 비핵화를 주장해 왔지만, 중국의 관영매체에 따르면 그 궁극 목표는 미군 철수 후 한반도 전체를 영구 중립국으로 통일시키는 전략이다. 남북한을 대충 뒤섞어서 친중 지대로 삼겠다는 속셈이다. 그저 허황된 중국의 일방적인 패권 야욕 같지만, 한국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서 북한과 손을 잡고 “우리민족끼리”를 외친다면, 그 “중국몽”이 실현되지 말란 법도 없다. 다만 오늘날 국제정치의 현실은 결코 중국 측에 유리하지 않다.

현재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지역 방위체제는 일본, 동중국해, 타이완, 남중국해, 필리핀, 베트남, 인도, 호주까지 넓게 포진해 있다. 세계 지도를 놓고 보면, 중화대륙이 국제적 반중 벨트에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2021년 3월 미국, 일본, 호주, 인도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위해 쿼드(Quad, 4자 안보 협의체)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2021년 8월 중순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을 뺀 직후, 미국과 영국은 호주에 핵잠수함을 제공하는 “아우쿠스(Aukus) 잠수함 기술제휴 협정”을 맺었다. 2022년 1월 6일 호주와 일본은 양국의 영토에서 군사 제휴를 가능케 하는 “상호 접근 협정(RAA)”을 체결했다. 미·일 군사동맹 위에 호·일 접근협정 및 미·영·호 3국의 안보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봉쇄작전의 3중 안전망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경우, 미국과 함께 호주, 일본도 자동 개입하게 된다.

과거 일본은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군국주의의 나라였다. 그 당시 일본은 “귀축미영(鬼畜米英)”의 구호를 외치며 영미 중심의 세계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오늘날 일본은 미국, 영국, 호주와 결합되어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심축으로 거듭났다. 그 결과 일본의 함대가 호주의 영해에 들어가서 군사훈련에 동참하는 반전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한데 일본의 사례보다 더 극적인 반전은 바로 1990년대 이후 베트남의 변화이다.

베트남, 소련 지원 받으며 중국의 위성국가로 남기를 거부

1956년 이래 중국은 막대한 규모의 무기와 군수품 지원으로 베트남의 항미(抗美) 투쟁을 배후에서 도왔다. 특히 문화혁명이 고조되던 1960년대 중반, 중국은 베트남에 대한 군사지원을 증대했다. 마오쩌둥은 미제국주의를 규탄하는 반미의 선전선동으로 문혁의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베트남에 대한 중국의 군사지원 밑에는 중화중심주의 조공체제의 관성이 작용했다. 중화제국의 입장에서 한반도와 인도차이나는 조공질서에 편입돼 있던 가장 모범적인 두 지역이었다. 청불 전쟁(1884-1885), 청일 전쟁(1894-1895)으로 국제법적으로 두 지역에 대한 재래의 종주권(宗主權, suzerainty)을 완전히 상실한 후, 중국은 이권 박탈 못잖게 심각한 자존심의 상처를 입었다. 중국이 한반도에서 미국과의 전쟁을 벌일 때도 과거의 번국(藩國, 울타리 국가)을 회복하려는 종주국(宗主國)의 허영이 작용했다. 베트남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았는데······.

중국의 막대한 군사지원에도 불구하고, 1975년 미군 철수로 남북통일을 달성한 베트남은 중국의 위성국가로 남기를 거부했다. 1978년 12월 25일 베트남은 캄보디아에 15만의 병력을 투입해서 2주 만에 폴 포트 정권을 무너뜨리고, 제노사이드를 종식했다. 베트남의 군사작전 배후에는 동남아 지역으로의 세력 팽창을 기도하던 소련의 지원이 있었다. 소련의 비호 아래 베트남이 동남아의 맹주로 성장하는 상황을 중국은 방치할 수 없었다.

<1979일 2월 23일 중국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베트남의 포병부대. 사진/ https://southeastasiaglobe.com/china-vietnam-border-war/ >
 
<1979일 2월 23일 중국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베트남의 포병부대. 사진/ https://southeastasiaglobe.com/china-vietnam-border-war/ >

1979년 중-베트남 전쟁,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중국

1979년 1월 말-2월 초 방미한 덩샤오핑은 카터(Jimmy Carter, 1924- ) 미대통령에게 베트남을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배은망덕한 베트남에 따끔한 교훈을 준다는 명분이었다. 깜짝 놀란 카터는 처음엔 덩샤오핑을 만류했지만, 불과 4년 전 베트남에서 치욕적으로 퇴각한 미국으로선 중국이 베트남을 공격해서 소련과 대립하는 상황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덩샤오핑은 전격적으로 베트남 침공을 감행했다. 1979년 2월 17일부터 3월 16일까지 중국 인민해방군 아홉 개 사단, 30만 정규군이 베트남에 투입됐다. 중국은 베트남 북부의 3개 도청을 점령하고, 국경 주변 12개 도시를 함락시켰다. 그렇게 한 달 간 베트남 영토에서 교전을 벌인 후, 중국은 순식간에 병력을 철수시키는 기동성을 과시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당시 중공 중앙은 베트남 병력의 4개 사단, 10개 연대를 박살내고, 5만7000명의 사상자를 냈다고 선전했다. 반면 하노이의 라디오 방송은 침략한 중국 병력의 사상자가 오히려 4만200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후 베이징은 중국 측 사상자는 2만1900명 정도라고 발표했지만, 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그 숫자는 6만2000까지 올라간다. 설사 중국 측 주장대로 2만19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해도 총 투입 병력의 7%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였다.

중국의 베트남 침공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1) 베트남의 병력을 중월(中越) 국경에 묶어두고, 2) 동남아의 맹주로 발돋움하려는 베트남의 의지를 꺾었다. 3) 중국은 군사·외교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만 명의 병력쯤은 쉽게 희생할 수 있음을 전 세계에 과시했고, 4) 그 결과 동남아에 대한 소련의 팽창 야욕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다.

반면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는 회복불능에 빠져들었다. 중국의 침략 이후에도 베트남은 굽히지 않고 1989년까지 캄보디아 영토 내에 군대를 주둔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은 중국의 선례를 따라 “개혁개방”을 논의하기 시작했지만, 중국과의 극적인 관계 개선은 없었다. 오히려 베트남은 1991년 소련이 해체할 때까지도 소련과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995년 베트남은 드디어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루고,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달성했다. 현재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2050년쯤이면 베트남이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 된다고 예측한다.

<1989년 철수 직전까지 캄보디아 캄퐁 참(Kampong Cham)에 주둔하고 있던 베트남 병력의 모습. 사진/ https://southeastasiaglobe.com/china-vietnam-border-war/>
 
<1989년 철수 직전까지 캄보디아 캄퐁 참(Kampong Cham)에 주둔하고 있던 베트남 병력의 모습. 사진/ https://southeastasiaglobe.com/china-vietnam-border-war/>

핵무장에만 매달린 북한, 겉으로는 자주 외치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괴뢰 정권화

베트남과 달리 북한은 여전히 핵무장에만 혈안이 되어 극단의 고립정책에 얽매어 있다. 베트남과 북한의 근본적 차이는 무엇일까? 베트남은 중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과감하게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참여했는데, 북한은 천하대세를 거부하고 중국의 괴뢰(傀儡)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언필칭 민족해방과 자주노선을 부르짖지만, 현실의 북한은 중국에 빌붙어서 연명하는 극빈의 “테러정권,” 극단의 “깡패국가”일 뿐이다. 베트남과 북한의 차이가 웅변하듯, 20세기 동아시아 제국(諸國)의 역사에서 “친중”은 죽음의 길이었고, “반중”은 생명의 길이었다.

2022년 현재 전 세계는 반중을 넘어 억중(抑中), 비중(批中)의 군사외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국의 차기 정권은 미국, 일본, 타이완, 호주, 인도, 베트남, 영국으로 이어지는 인도-태평양 안보 협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3불 정책”이냐, “사드 추가배치”냐? 외교 문맹이 아니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문제이다.

지금이라도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려면, 제 1의 급선무는 무엇일까? 조선노동당이 직접 시대착오적 “김일성 주체사상”과 허황된 “수령유일주의”를 비판하고, 해체하고, 극복하는 정치사상의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 42년 전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사상”을 해체하기 위해 사상투쟁을 전개했던 의미를 되새길 때다. 당시 덩샤오핑이 부르짖었다. “실천만이 진리의 유일한 기준이다.” 아직까지도 구시대의 낡은 이념을 붙들고 죽음의 늪지대를 방황하는 남·북한의 쇄국 집단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경구이다. <계속>

<2019년 2월 27일, 하노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베트남의 뉴웬 푸 트롱 공산당 총서기. 사진/wiki commons>
 
<2019년 2월 27일, 하노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베트남의 뉴웬 푸 트롱 공산당 총서기. 사진/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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