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전 강원 고성에서 철책을 넘어 귀순했던 남성이 새해 첫날 똑같은 수법으로 월북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명 ‘별들의 무덤’으로 악명이 높은 22사단에서다. 해당 남성은 육군 제22보병사단의 책임 경계구역에 있는 관문을 3개나 통과해 북한으로 향했다.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고, GP(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주변의 감시 장비에 포착된 뒤, MDL(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철책을 넘어 비무장지대에서 포착되기까지 군은 2시간 40분 동안 월북자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다.

문제는 22사단 경계망이 뚫린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점이다. 최근 들어서만 해도 ‘노크 귀순’(2012년) ‘점프 귀순’(2020년) ‘오리발 귀순’(2021년) 그리고 이번 ‘새해 월북’ 사건까지 4건에 이른다. ‘군의 기강 해이’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지만, 국방 전문가들과 최근 22사단에서 복무를 마친 장병들이 짚은 근본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래픽=김현국
 
그래픽=김현국

◇最북단‧最전방‧最장 구역의 부대

22사단은 동해안과 휴전선이 만나는 ‘동부전선’의 최전방 지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도가 높은 곳에 있는 사단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중이던 1953년 창설돼 2020년 12월 지금의 3개 여단과 1개 포병여단을 갖췄다. 경계 책임구역은 내륙 28㎞, 해안 69㎞로 총 97㎞에 달한다. 보통 한 사단이 책임지는 구역이 25~40㎞인 것에 비하면 22사단 경계 구역은 최대 4배 가까이 넓은 셈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곳은 군에서 유일하게 산악, 해안을 동시에 경계하는 곳인데, 보통 사단처럼 1만~1만5000명대 병력이 이 넓은 지역을 책임지니 과도한 부담을 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등산로, 관광지와 인접한 탓에 일반인 수색에 병력을 투입하는 일도 잦다. 실제로 장병들은 봄에는 나물 캐는 사람들, 가을에는 산삼을 캐러 민간통제구역까지 들어가는 사람들을 단속하는 업무까지 하고 있다. 22사단 GP 상황병으로 전역한 민모(22)씨 역시 “이상 징후가 보이면 여단 내 모든 비상 출동조가 3~4시간씩 수색에 나서는데, 그나마도 부족한 병력이 이런 일에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가을엔 심마니들을 단속하러 투입된 병사가 낙상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22사단의 책임구역 부담은 더 커질 예정이다. 인구 감소에 대비한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군은 내년까지 22사단의 상급 부대인 8군단을 해체하고, 22사단과 23사단을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2사단 포병대대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강모(26)씨에 따르면 군 생활 중 월남 사건으로 대기하는 상황이 3번 가까이 있었다. 강씨는 “통신분과 유선반은 원래 인원이 적은데, 복무 기간 동안 인원이 감축돼 처음보다 업무량이 2배 가까이 늘었다”고 했다. GP에 근무했던 민씨는 “새로운 인원이 충원되지 않아 몇 달씩 휴가 못 가는 병사들이 많았다”며 “새벽에 북측에서 화재가 발생해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간신히 꺼진 적이 있었는데, 비상 근무자 전원이 대기 상태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신 과학 장비 무력화한 ‘이것’

국방개혁 계획에 따르면 군은 2022년까지 13만명쯤 병력을 줄일 예정이다. 이런 병력 감소를 대비할 방법으로 과학화 경계시스템이 도입됐다. 군이 ‘물샐틈없다’고 자랑한 이 시스템은 CCTV 카메라, 열상 감시장비(TOD), 광망 철책 등으로 이뤄져 있다. 철책에 설치된 광망(철조망 센서)이 동작을 감지해 경보를 울리면, CCTV가 자동으로 해당 구역을 비춰 감시병이 이를 확인하는 시스템이다. TOD는 빛이 없는 곳에서도 물체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별도의 장비다.

과학 장비라 할지라도 만능은 아니다. 특히 체감기온 영하 40도의 한겨울 고성 날씨는 이를 무력화하기 좋은 요건이다. 22사단 GOP에서 TOD 장비를 다뤘던 감시병 출신 정모(27)씨에 따르면 한 사람이 4~8시간씩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확인해야 한다. 그는 “추운 겨울이 되면 TOD 장비가 가동을 멈추는 날이 한두 번씩 있었다”며 “매뉴얼대로 수리를 해도 정상 가동까지 1시간 이상 걸렸고, CCTV는 아예 터져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이화여대 북한학과 박원곤 교수는 “지난 1일 일어난 월북 사건은 CCTV 감시병과 추후 사단의 대처가 미흡했던 부분도 있지만, 줄어든 병력을 과학 장비에만 의존하려 했던 지도부 또한 책임이 있다”며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감시병 한 명이 CCTV 모니터 15~20대를 수 시간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뛰어난 장비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유능한 ‘별’이 부임한들

지금까지 사단 내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문책성으로 사단장이 해임되는 것이 수순이었다. 22사단에 ‘별들의 무덤’이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다. 실제로 22사단은 창설 이후 지금까지 8명이 징계를 받았고, 2009년 이후에만 5명이 해임됐다. 작년 한 해만 ‘동해 민통선 침입 사건’ ‘군 내 성추행 피해자 2차 가해’로 2명의 사단장이 해임됐다. 이번 사건으로 현 사단장이 또 교체될 경우 임기 한 달도 못 채운 ‘최단기 해임’을 기록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유능한 사단장이 와도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결과는 똑같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원곤 교수는 “사건 재발 방지가 목표라면 해임 대신 책임지고 사건을 조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애초에 접경 초소에 주어진 역할보다 과도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양욱 연구위원은 “GP나 GOP는 대규모로 진격하는 적군을 빨리 알아채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며 “작정하고 몰래 접근하는 1~2명을 완벽히 막으려면 초소가 아닌 국경 수비대를 설치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9·19 남북군사합의(2018년) 조항이 아니었다면 접경 지역 경계가 더 수월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남북군사합의 1조 3항은 ‘군사분계선 상공에서 모든 기종들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양욱 연구위원은 “남북 평화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위와 같은 조항을 두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열악한 초소에서 서로를 감시하는 것보다 UAV(무인비행기) 등을 띄우는 것이 정확하고 신속하게 경계 태세를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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