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방과학원이 5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현장에 참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미사일이 700km 밖의 목표물을 오차 없이 명중시켰다고 밝혔다./노동신문 뉴스1
 
북한 국방과학원이 5일 극초음속미사일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6일 보도했다. 김정은 당 총비서는 현장에 참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미사일이 700km 밖의 목표물을 오차 없이 명중시켰다고 밝혔다./노동신문 뉴스1

북한은 6일 “국방과학원은 1월 5일 극초음속 미사일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며 “700㎞에 설정된 표적을 오차 없이 명중시켰다”고 보도했다. 마하 5 이상으로 활강하며 변칙 기동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은 현존 미사일 방어 자산으로 요격이 불가능한 ‘게임체인저급’ 무기다. 작년 9월에 이어 두 번째로 이뤄진 이번 발사를 통해 속도와 변칙 기동 능력을 크게 높인 것으로 보인다. 자강도에서 동해 쪽으로 발사된 이번 미사일 방향을 남쪽으로 틀면 제주도를 제외한 한국 전역과 모든 주한 미군 기지가 사정에 들어간다. 사실상의 대남 타격 연습인 셈이다.

과거 이런 북한의 도발 때는 한·미 외교 당국이 가장 신속하게 상황 공유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미·일 외교 장관 통화가 먼저 이뤄졌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은 이날 북한의 발표 2시간 뒤인 오전 8시 10분부터 35분간 통화했다. 미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고, 일본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은 철통같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하야시 외상이 “어제 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북한에 의한 핵·미사일 활동은 일본, 지역,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두 장관이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하도록 계속해서 일·미가 긴밀히 연계해 가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밝혔다.

한·미 간에는 전날 양측 북핵 수석대표인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유선 협의를 가졌지만 6일 밤까지도 장관 간 통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외교 장관 통화 계획을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알려드릴 소식은 없다”고 말했다. 미·일 외교 장관 간 통화가 주일 미군의 코로나 확산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사전에 잡힌 일정임을 감안하더라도 한·미 간 통화가 미·일보다 크게 늦어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유럽연합(EU) 대변인은 “북한의 거듭된 미사일 발사는 대화를 재개하려는 국제적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안보리 결의에 따른 의무를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6일 보도했다.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서 한참 벗어난 나라들은 일제히 북한을 규탄하는데 정작 북한 미사일 위협에 직접 노출된 한국만 쉬쉬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선 “북한의 무력시위를 문제 삼으려 하지 않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탓”이란 말이 나왔다. 전날 긴급 소집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도발’ 표현 없이 ‘우려’만 표명했고, 이날 다시 열린 NSC 회의에서는 “북한과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북한 극초음속 미사일 얘기는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우리나라 최북단(강원도 고성)의 남북 철도 협력 사업 현장을 찾아 “(북한과) 대화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문 대통령의 헬리콥터 이륙 1시간 전에 이뤄져 한때 일정 취소가 논의됐지만 문 대통령은 일정을 밀어붙였고 도발 규탄이 아닌 대화 재개에 방점을 찍었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이번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냐는 질문에 직접적 언급을 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도 “북한 보도 등에서 한·미를 겨냥한 언급이나 표현이 없고, 자체 국방력 현대화 계획의 일환이라는 측면만 거론하고 있다”며 “북한의 발사 의도를 어느 한 방향으로 단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외교 안보 부처들이 ‘결의 위반’ ‘도발’ 표현이 금기어인 듯 사용을 피한 것이다.

평창올림픽발 평화 공세가 한창이던 2018년 무력시위를 중단했던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인 2019년 5월부터 미사일 발사 시험을 재개했고, 최근 1년 새 신무기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대부분 사거리가 수백㎞의 신형 탄도미사일 또는 방사포로 모두 대남 타격용이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결의임을 지적하거나 규탄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교착에 빠진 남북 대화 재가동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해석됐다. 특히 북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작년 9월 자신들의 무기 개발에 대해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로 정부 발표에서 ‘도발’이란 표현이 아예 실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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