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라는 가혹한 세월을 견뎌낸 가족들이 지난 15일부터 18일까지 서울과 평양에서 껴안으며 눈물 흘렸다. 심야에 구급차에 실려 쉐라톤 워커힐에 도착한 뒤 호텔 입구에서 아들과 재회한 할머니에게서 고생이 새겨진 주름살을 봤다. 가슴 깊은 곳에서 뭐라 형언하기 힘든 흥분과 감동이 들끓었고, 결국 이를 참아내지 못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전으로 한반도는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남북 분단의 계기가 되는 미국과 구소련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시작됐다. 8월 15일은 한반도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인 것이다. 상호방문 날짜가 이날로 결정된 데에는 커다란 정치적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15일 오전 10시, 천안시 ‘독립기념관’에서 광복 55주년 기념행사가 시작됐다. 약 1시간 뒤인 오전 10시57분, 김포공항 활주로에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국기를 내걸고, 기체에는 한글로 ‘고려항공’이란 글자가 적힌 특별기가 착륙했다. 분단 후 처음으로 북한 민간항공기가 서울로 날아온 역사적 순간이었다.

북한 방문단이 서울시내 호텔에 들어갔을 때 가족을 납북당했다고 호소한 시민단체의 멤버가 그곳 현장에 있었다. 1987년 1월 한반도 서해상에서 어선의 어로장이던 당시 43세의 아버지를 북한에 ‘납치’ 당해 아직까지 소식을 모른다는 시민단체의 여성대표(31). 그녀는 “우리 역시 이산가족”이라며 이산가족 방문단에 호소하려 했으나, 그 목소리와 모습은 시민의 눈과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날이 8월 15일이 아니라면 그리고 식민지배와 분단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반대할 수 없는 ‘민족의 화해와 교류’를 주제로 한 행사가 아니라면, 이러한 시민단체의 목소리는 무시당할 리 없을 것이다.

남북화해와 민족독립을 강조하면 할수록 서울 중심부에 사령부를 갖고 있는 주한미군에 대한 혐오감이 시민들 마음 속에 퍼지기 시작했다. 한국사람들의 민족의식을 높인 남북 정상회담 직후에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서울을 방문하고, 김 대통령이 직접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은 한국 내의 주한미군 철수론을 잠재우고 반미감정을 식혀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북화해를 상징하는 다음 행사는 ‘추석’에 맞춰져 있고, 서울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경의선의 복구 착공식이 열린다. ‘민족’이 키워드인 ‘퍼포먼스’는 당분간 한반도를 무대로 반복될 것이다. 그것은 이산가족의 상시적 만남과 연락, 그리고 언젠가 (이산가족이) 함께 살 수 있다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에 진정으로 연결된 것인가? 또 남북통일과 지역안정 실현에 올바른 길인가? 흥분이 다소 가라앉은 시점에서 다시 한번 냉철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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