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문재인 대통령의 최북단 남북 철도 협력 사업 현장 방문은 새해 첫 외부 일정이었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 때 약속한 철도 사업 이행 등을 확인하고 평화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취지에서 잡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이에 맞춰 78일 만에 무력 시위를 재개했다. 정부의 거듭된 종전 선언 및 대화 재개 요구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사안인 탄도미사일 발사로 답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대화 끈을 놓아선 안 된다”고 했고, 군(軍) 당국은 미사일 세부 제원을 밝히지 않았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북 미사일 발사가 “도발이 아니다”라고 했다.

◇북, 극초음속 미사일 쐈나

북한은 이날 오전 8시 10분쯤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쐈다. 합동참모본부는 4분 후인 오전 8시 14분, ‘미상 발사체 발사’ 상황을 국방부 출입기자단에 전파했다. 오전 9시 31분에는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라고 했고, 오후 2시 26분에는 “제원의 특성을 한미 정보 당국이 정밀 분석 중”이라고만 했다. 합참은 통상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 당일 사거리와 탄도 같은 세부 제원을 공개하곤 했는데 이번엔 밝히지 않은 것이다.

반면 일본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이날 북한 탄도미사일과 관련, “약 500㎞ 비상한 뒤 일본 배타적경제수역 바깥에 낙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이 때문에 군 안팎에서는 이날 문 대통령의 남북 행사 때문에 군이 의도적으로 북 미사일과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숨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와 관련, 합참 관계자는 “일본의 미사일 관측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며 “제원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고 했다.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취지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등 최신 전력을 발사했기에 한미 정보 분석이 늦어진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사거리와 고도 등 사항은 한미 자산으로 실시간으로 감지하므로 발표가 늦어지기 어렵다”며 “지난해 3월 북한이 발사한 이스칸데르 미사일처럼 ‘변칙 기동’을 하는 자산이었다면 탐지가 어려웠을 수 있다”고 했다. 당시 합참은 북한 미사일 사거리가 450㎞라고 밝혔지만 북한은 600㎞라고 했었고 최종적으로 북한 발표가 맞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도발 표현 사라진 정부

이날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문 대통령 헬기가 뜨기 1시간 전에 이뤄졌다. 갑작스러운 북한 도발에 청와대 내부에서는 일정 취소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문 대통령은 일정을 강행했다. 임기 말 남북 이벤트에 대한 집착이 그만큼 강하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강원 고성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진역이 사람들과 물류로 붐비는 그날, 마침내 한반도에는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강원 고성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 건설 착공식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제진역이 사람들과 물류로 붐비는 그날, 마침내 한반도에는 완전한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뉴시스

문 대통령은 오전 11시 강원도 고성 제진역에서 열린 동해선 강릉~제진 철도 건설 착공식에서도 ‘대화’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판문점 선언을 언급하며 “남과 북은 철도와 도로 교통망을 연결하기로 약속했다”며 “아쉽게도 그 후 실질적인 사업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지만 우리의 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청와대는 오전에 화상으로 NSC 상임위원회를 소집했지만, ‘우려’만 표명했을 뿐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도발’ 표현은 쓰지 않았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이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도발로 규정하긴 어려운가’라는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 질문에 “도발이라는 용어는 우리 국민과 영토, 영해, 영공에 위해를 가하는 것이라고 통합방위법에 규정돼 있다”고만 했다. 북한 미사일이 직접 우리 영토 등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도발이 아니라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지난해 9월 북한 김여정이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 하지 말라’고 경고한 이후 정부에서 ‘도발’ 표현이 사라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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