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 월북 사건은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킨 GP 인근에서 발생했다. 사진은 텅 빈 GP 모습.  /연합뉴스
 
새해 벽두 월북 사건은 남북 군사 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시킨 GP 인근에서 발생했다. 사진은 텅 빈 GP 모습. /연합뉴스

새해 벽두 강원도 최전방 철책을 넘은 월북자가 1년여 전 비슷한 곳 철책을 넘어온 탈북민으로 파악됐다. 2020년 11월 ‘기계체조’를 했다는 북한 남성이 우리 측 철책을 뛰어넘어 귀순했는데 같은 인물이 1년 전 철책에서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다시 넘어 북으로 갔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전방 CCTV 확인 결과 “월북자 인상착의가 당시 귀순자와 거의 동일하다”고 했다. 1년여 전 뚫렸던 철책이 다시 뚫린 셈이다.

정상적 군대라면 한번 뚫린 지역의 경계는 강화하는 것이 상식이다. 전 세계 군대가 그렇게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군은 불과 1년여 전 처참하게 경계를 실패했던 곳과 가까운 지역에서 같은 실패를 반복했다. 군의 기본 임무인 경계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군복만 입었지 군이 아니다.

군 당국은 이 남성이 비무장지대(DMZ)에 들어갔을 때 북한군 3명이 나와 그를 데려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발포 명령을 내린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남성은 탈북민 정착 교육 당시 이상행동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국내 생활도 불분명하다. 군은 ‘간첩 혐의는 없다’고 했지만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없다.

1년여 전 이 남성이 철책을 타고 넘어왔을 때는 감시 센서가 먹통이었다. 사람이나 동물이 닿기만 해도 센서가 울린다는 ‘과학 경계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지만 센서의 나사가 풀린 탓에 경고음이 울리지 않았다. 군은 이 남성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14시간 넘게 우리 측 지역을 활보하는데도 붙잡지 못했다. 이후 군은 경계 시스템을 인공지능(AI) 기반 등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지난 1일 이 남성이 철책을 넘어 북으로 갈 때는 감시 센서와 CCTV가 정상 작동했다. 모두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데 감시병은 철책 넘는 장면을 놓쳤다. 화면을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초동 조치 병력이 해당 철책으로 갔지만 ‘이상 없다’ 보고를 하고 그냥 철수했다. 동물이나 오작동으로 지레 짐작했을 것이다. CCTV 화면만 돌려봤어도 상황을 알았을 텐데 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사람이 책임감을 갖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겠다는 정신 자세가 없으면 어떤 첨단 장비도 무용지물이다.

5년 내내 정권은 남북 쇼, 평화 쇼만 벌였다. 북핵 미사일은 그대로 있는 정도가 아니라 위협이 더 커졌다. 그래도 정권 눈치를 보는 군 수뇌부는 ‘군사력 아닌 대화로 나라 지킨다’고 했다. 어떤 군인이 책임 의식을 갖고 의무를 다하겠나. 그러니 뚫린 곳이 또 뚫리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바로 이곳이 다음에 또 뚫릴 것이다. 한국군은 엄청난 국방비를 쓰고 있다. 그렇게 사들이는 비싼 장비 무기들이 유사시 제 역할을 할 것인지 아닌지는 군 수뇌부가 잘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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