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강원 고성 육군 22사단 경계를 뚫고 ‘점프 귀순’한 김모(30)씨는 1년여 만인 지난 1일 같은 지역을 통해 다시 북으로 돌아갔다. 체조 경력이 있는 김씨가 14개월 간격으로 제집 드나들 듯 탈북과 월북을 반복하며 군 경계를 무력화한 것이다. 동일 인물에 의한 동일 지역 반복 경계 실패는 창군 이래 초유 사태다.

금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보존 GP(감시초소)’모습. 보존 GP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하고 경계감시장비만 설치해둔 초소다. 2020년 귀순했다 지난 1일 월북한 탈북민 김모씨는 보존 GP의 허술한 감시를 이용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연합뉴스
 
금강산 전망대에서 바라본‘보존 GP(감시초소)’모습. 보존 GP는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병력을 철수하고 경계감시장비만 설치해둔 초소다. 2020년 귀순했다 지난 1일 월북한 탈북민 김모씨는 보존 GP의 허술한 감시를 이용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었다. /연합뉴스

북한이 1일 밤 북한군 3명을 보내 김씨를 맞이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나타났다. 2020년 9월 코로나 방역을 빌미로 서해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사살·소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조치다. ‘간첩활동’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군은 3일 “김씨는 국가 중요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직종에 종사해왔다”며 “대공 혐의점이 없다”고 단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계 실패에 대해 참모들을 질책하지 않았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밝혔다.

합동참모본부·군사안보지원사령부·국가정보원·경찰 등 당국 조사 결과, 김씨는 월북 10시간여 전인 1일 정오쯤 고성 민간인통제선 인근 폐쇄회로(CC)TV에 포착됐다. 김씨로 특정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 인상 착의가 CCTV에 나타나 있었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김씨는 오후 6시 40분 22사단 일반전초(GOP) 철책을 넘었다. 2020년 11월 ‘점프 귀순’을 한 철책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CCTV를 본 한 소식통은 “날다람쥐 같았다. 동작이 정말 빨라서 놀랐다”고 했다.

2020년에도 군은 열상감시장비(TOD)로 김씨 월책을 포착하고도 14시간 동안 남쪽 지역을 활보하도록 방치했다. 당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신병을 확보했으니 경계 실패가 아니다”라고 했다. 1일 동일 인물이 인근 철책을 또 넘었고 CCTV와 철책 센서가 이를 감지했지만 군은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3시간가량이 지난 오후 9시 20분 TOD가 A씨를 3차 포착하고 나서야 군은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그래픽=양인성
 
그래픽=양인성

국방부는 밤 10시 40분 김씨가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뒤 북쪽에서 김씨를 포함한 인원 4명이 확인됐다고도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측 인원 3명) 접근 성격이나 분위기에 대해선 열점(熱點)으로 포착된 것이라 구체적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2020년 9월 서해 공무원 사건 당시 북한이 코로나에 따른 ‘국가 비상 방역’을 이유로 즉각 사살·소각에 나섰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대처다. 북한은 그때 코로나 확산 방지 명목으로 국경 무단 접근 시 ‘무조건 사살’ 명령을 발효하고 있었다.

일각에선 김씨가 북한과 모종의 사전 접선을 한 뒤 월북에 나섰기에 북한이 ‘안내원’ 성격의 3명 병력을 보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월북 시점으로 새해 첫날인 1일을 고른 것도 독자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는 간첩 등 대공 용의점을 묻는 질문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청소 용역원으로 종사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진 김씨와 대공 용의점은 거리가 멀다는 취지다. 하지만 당국이 김씨의 통신 내역 등에 대한 면밀한 조사 없이 의혹을 섣불리 축소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초유의 경계 실패 사태에도 군은 책임 떠넘기기와 꼬리 자르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해당 지역 경계 책임을 맡은 상급 부대 관계자는 “6시 40분 월책 장면 CCTV를 돌려본 중대장이 임의로 ‘이상 무’ 판단을 하고 대대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철책 경보는 대대·여단·사단·군단에 울리지 않았다”고 했다.

합참 전비태세검열실도 중대장의 책임을 살펴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현장에 초동조치반까지 출동한 시점에서 CCTV 등 세부 사항을 확인하고 상황을 종결할 권한과 책임은 8군단에 있다. 속출하는 경계 실패 책임을 현장 하급자에게 떠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대대에서 군단까지 상급 부대가 정말 철책 경보를 몰랐다면 최전방 경계 시스템이 완전 붕괴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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