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대남·대미 메시지를 공개하지 않았다. 연초에 북한 최고 지도자의 대남·대미 메시지가 간략하게라도 나오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다. 제재와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경제난 극복에 체제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외 사업 전반의 우선순위가 뒤로 밀린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하노이 노딜’(2019년 2월) 이후 3년째 신년사를 생략하고 있다. 2020년과 지난해엔 각각 전원회의 결론과 친필 서한으로 신년사를 대신했다. 이어 올해에 또다시 연말 전원회의 결과를 노동신문 1월 1일 자 1면에 실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의 전원회의 보도에서 대남·대미 정책과 관련한 부분은 딱 한 문장으로 “다사다변한 국제정치 정세와 주변 환경에 대처하여 북남 관계와 대외사업 부문에서 견지하여야 할 원칙적 문제들과 일련의 전술적 방향들을 제시하였다”라고 언급한 게 전부였다. 모두 79글자(공백 포함)로, 1만8400여 글자 결과 보도문의 0.4%에 불과하다. 정책 방향을 가늠할 구체적인 내용이나 핵 관련 언급이 전혀 없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3월 한국 대선 등을 앞두고 대외 정책 환경의 변동성이 높은 상황에서 정책 노선의 확정·공표를 피함으로써 차후 정책 추진 시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당중앙위 전원회의는 지난달 27일부터 31일까지 5일간 진행돼 기존 최장 기록(4일)을 경신했다. 규모 면에서도 원래 참석 대상인 당중앙위원회 멤버 전원(200여 명) 외에 각급 지도기관과 공장·기업소 간부들까지 1000여 명이 참가했다. 역대 최장·최대였지만 정작 김정은은 첫째 날과 둘째 날만 참석해 전반적으로 ‘맥 빠진 전원회의’였다.

이번 전원회의는 표면적으로 경제 문제에 집중했지만 정작 이렇다 할 성과나 목표를 보여주진 못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일부 성과를 내세워 경제난 극복을 과장하고 2021년을 ‘자랑찬 승리의 해’로 포장했다”고 했다. 송신·송화지구 1만 가구 건설에 대해 ‘완공’이란 표현을 쓰지 않고 ‘기본적으로 결속됐다’는 애매한 표현을 쓰는 등 주요 경제 목표들에 대해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원회의에서 이목을 끈 것은 농촌 문제를 평소보다 훨씬 강조했다는 점이다. 6개 의제 가운데 ‘우리나라 사회주의 농촌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당면 과업에 대하여’를 세 번째 의제로 정하고 김정은이 직접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 발전의 위대한 시대를 열어나가자’는 제목의 보고를 했다. 농업과 농촌이라는 단어를 143회 언급했다. 한기범 전 국정원 1차장은 “분야별 사업 방향의 하나로 농촌 문제를 제시해도 충분할 것을 별도의 단일 의제로 정해 김정은이 대책 방향을 제시하며 3일간 분과별 토론에 회부했다”며 “극심한 농촌의 생활난 개선과 식량 증산 문제가 절박함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 당중앙위 부부장은 이번 전원회의를 통해 보선된 정치국 위원과 후보 위원 명단에 들지 못했다. 앞서 김여정은 지난달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0주기 보고대회 때 호명 서열이 급상승해 정치국 진입이 유력시됐다. 대북 소식통은 “김여정이 맡고 있는 대남·대미 사업에서도 당분간 유의미한 움직임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