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 동부전선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병사들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자료사진. 동부전선 강원도 고성군 22사단 병사들이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조선일보 DB

새해 첫날인 1일 우리 국민으로 추정되는 1명이 강원도 동부전선 22사단 지역 최전방 철책을 넘어 월북해 논란이다. 군 당국은 월북자가 일반전초(GOP) 철책을 넘을 당시 감시장비에 포착됐는데도 3시간가량 월북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드러나 경계감시망 허점뿐 아니라 부실 초동조치 부실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월북자는 군인이 아닌 민간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월북한 미상 인원 1명은 1일 오후 6시 40분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어 동부전선 비무장지대(DMZ)로 진입했다. 이 같은 모습은 경계감시장비 CCTV에 포착됐다. 하지만 CCTV 감시병이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1차 제지 기회를 놓쳤다. 미상 인원은 이렇게 DMZ에서 북쪽을 향해 이동했으며 3시간 뒤인 오후 9시 20분 우리 군에 포착됐다. 군은 이에 즉각 병력을 출동시켜 월북 제지 작전에 돌입했다. 하지만 이 미상 인원은 포착된 지 1시간 20분 뒤인 오후 10시 40분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월북에 성공했다. MDL에 근접한 상황에서 그를 발견해 우리 병력이 그를 뒤 따라가 제지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MDL 월북 4시간 전에 CCTV로 포착했지만, 3시간 동안 아무 대처를 하지 못해 월북을 허용한 꼴이 됐다. 합참 관계자는 “초동조치 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확인했다면 하는 미흡한 부분은 있었다”며 현재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합참 전비태세검열실 요원들이 현장에 급파됐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22사단은 강원도의 험준한 산악 지형과 긴 해안을 함께 경계하는 부대다. 이런 환경 등으로 인해 사건·사고가 잇따라 ‘별들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지난 10여년간 임기를 제대로 채우지 못한 사단장이 그렇지 않은 사단장보다 많다고 할 정도다.

2019년 4월 3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인근 DMZ평화둘레길 개설지역에서 막바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DMZ 평화 둘레길은 해안 철책을 따라 남방한계선까지 이동 후 다시 좌측으로 금강산 전망대까지 이어진다./김지호 기자
 
2019년 4월 3일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 인근 DMZ평화둘레길 개설지역에서 막바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DMZ 평화 둘레길은 해안 철책을 따라 남방한계선까지 이동 후 다시 좌측으로 금강산 전망대까지 이어진다./김지호 기자

이 부대에서는 작년 2월 북한 남성 1명이 고성 통일전망대 인근 해안을 통해 ‘오리발’ 등을 착용하고 뚫린 배수로를 통해 월남한 사건이 발생했다. 불과 3개월 전인 2020년 11월에는 북한 남성이 최전방 철책을 넘은 지 14시간 30분 만에 기동수색팀에 발견돼 초동 조치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당시 북한 남성은 GOP 철책으로부터 1.5㎞ 남쪽까지 이동해 있었다.

2014년엔 임 모 병장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단장과 참모들이 줄줄이 보직 해임됐다. 2012년 10월에는 북한군 병사가 군 초소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표시한 일명 ‘노크 귀순’이 발생했다. 2009년엔 민간인이 철책을 절단하고 월북하는 사건이 있었다.

22사단은 전군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감시소초(GP)와 일반전초(GOP) 등 전방경계와 해안경계를 동시에 맡는 사단이다. 책임구역을 보면 전방 육상 30㎞, 해안 70㎞ 등 총 100㎞에 달한다. 다른 최전방 GOP 사단의 책임구역이 25∼40㎞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너무 넓다는 평가다. 군사분계선(MDL)과 맞닿은 철책 지역은 한국군 최전방 지역 중에서도 가장 험준하기로 소문난 곳이다. 이 때문에 열상감시장비(TOD) 등 감시장비 운용이나 작전병력 투입에 애로사항이 많은 게 현실이다.

2021년 2월 16일 새벽 북한 남성이 월남 후 강원 고성 제진검문소 인근 CCTV에 포착된 장면. /TV조선
 
2021년 2월 16일 새벽 북한 남성이 월남 후 강원 고성 제진검문소 인근 CCTV에 포착된 장면. /TV조선

하지만 이런 환경을 고려해 22사단의 잇단 경계 부실 문제를 동정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 이번 월북 사건도 최초 CCTV 포착 시 제대로 초동 대처했으면 월북을 제지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월남 사건 때도 북한 남성이 새벽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해안 철책 하단의 배수로로 통과하기 전까지 해안 경계 CCTV 등 카메라에 총 8차례 포착됐는데도 부대는 제대로 대응 조치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선대위 장영일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재인 정권이 결국 대한민국 국방을 절단냈다”며 “곪을 대로 곪은 안보 불감증과 무딜 대로 무뎌진 군 기강 해이가 드러난 것으로, 문재인 정권이 자행해 온 대한민국 국방·안보 파괴의 단면”이라고 했다.

장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GP 패싱’”이라며 “문 정부는 2018년 말 남북 각각 11개씩의 GP를 시범 철거했다. 북한은 160여 개, 우리는 60여 개의 GP를 운영 중이어서 경계 차질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그대로 단행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남북 합의에 따른 GP 전면철수는 없던 일이 됐고 결국 북한과의 GP 격차는 세 배 이상으로 벌어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군’이고, 군사력이 아닌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는 군이지만 그래도 군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란 게 있다. 경계에 실패한 군은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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