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통일의식조사’에서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4.7%였다. 2018년 16.1%, 2019년 20.5%에 이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대에선 35.3%, 30대에선 30.3%가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사회 미래의 주역인 2030세대들은 더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눈물 흘리지 않는다. 북한의 핵·미사일 폭주로 인해 ‘통일을 해야 한다’를 따지기 전에 ‘통일이 가능할까’라는 의문도 커지고 있다.

2015년 출범 이후 국내 최대 민간 통일운동 사업을 주도하는 ‘통일과나눔’ 재단의 고민도 이런 현실과 맞닿아있다. 올해 취임한 이영선 통일과나눔 이사장을 10일 서울 광화문 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경제학자인 이 이사장은 “정치권도 요즘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안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통일을 고민하고 이후를 준비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는 “통일은 쉽게 오지 않지만 갑작스럽게 온다”고도 했다.

이영선 통일과나눔 재단 이사장이 10일 서울 광화문 재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경제학자인 이 이사장은 “너무 계산적으로 통일을 다룰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점은 확실히 잘 알려야 한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이영선 통일과나눔 재단 이사장이 10일 서울 광화문 재단 사무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경제학자인 이 이사장은 “너무 계산적으로 통일을 다룰 것은 아니지만, 통일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된다는 점은 확실히 잘 알려야 한다”고 했다. /오종찬 기자

170만명 동참해 통일 펀드 1500억원 모아

―재단이 출범한 6년 전과 지금은 통일 환경, 대북 환경이 크게 바뀌었다.

“당시 짧은 시간 내에 170만명이 통일에 대한 고귀한 뜻에 동참해 1500억원을 모았다. 어린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줄을 서서 기부 대열에 동참한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다. 하지만 몇 년 새 남북 관계가 부침을 겪었고, 대북 제재 등으로 통일 활동에도 제약이 많았다. 그러면서 통일에 대한 열망도 사그라진 것 같다. 이 시점에 다시 통일 인식을 재정립하는 노력이 재단과 우리 사회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

―지금 북핵 상황, 남북 관계나 국제 여건을 고려할 때 ‘통일’은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통일 논의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져 갈 수는 없다. 다만 우리는 민간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려 한다. 통일이라는 대의는 결코 그냥 묻혀서는 안 된다.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인식들을 없애고, 또 필요하면 정치권에도 목소리를 내려 한다. 통일 이슈를 정치권에서 전혀 다루지 않는 것은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통일시대를 열어나가고 대비해야 할 국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의 통일정책에 대한 공약이나 검증이 전혀 없지 않나.”

―지금 정부 여권은 통일보다는 북한과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단기적으로 공존을 통한 평화 추구를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만, 우리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너무 숨기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본다. 진정한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는 결국 통일이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보장하는 통일을 위해서 우리가 대비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 정치인, 지도자들이라면 어떻게 통일 한반도를 성취해 나갈 거냐를 공론화하고 국민의 의식을 일깨워야 한다고 본다.”

통일되면 남북 대치비용 크게 줄어

‘통일의식 조사’에서 통일이 싫다는 사람들은 그 이유로 ‘경제적 부담’(34.8%), ‘통일 이후 생겨날 사회적 문제’(27.6%)를 가장 많이 꼽았다. 사회경제적 비용에 대한 거부감은 젊은 세대일수록 두드러졌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남북 단일팀으로 구성한다는 정부 결정에 앞장서서 반대한 것도 20대였다.

―지금 젊은이들은 위 세대와 달리 통일을 ‘민족적 사명’으로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왜 꼭 통일을 해야 하지”라고 묻고 있다.

“젊은 세대들에게는 취업난, 주택난 등 현실적 문제가 더 급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북한과 공동체가 되면 이런 문제들이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통일이 대박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들었다. 하지만 통일은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에 상당히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통일이 되면 우리 인구가 8000만이 돼서 규모의 경제로 경쟁력을 훨씬 더 높일 수 있다. 또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동남아 등으로 진출하던 우리 기업들 자본이 북한 지역의 고급 노동력과 결합하고 북한의 풍부한 자원까지 활용하면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창출해 낼 수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일자리와 기회가 만들어진다. 비용보다 훨씬 더 큰 장기적 편익이 나타날 것이고 이는 청년들의 미래와 직결된다.”

―하지만 당장은 막대한 돈이 들어가지 않을까.

“통일 후 혼란과 충격파를 최소화하려면 북한 사람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북에 남아서 활동하게 해야 한다. 그대로 살아가면서 점차 생활수준을 남쪽의 60% 수준으로 쫓아오게 지원해야 할 것이다. 독일 통일 후 서독은 10년 동안 매년 GDP의 5%쯤 되는 재원을 동독 지역으로 보냈다. 이를 적용해 우리도 매년 우리 GDP의 5% 정도를 북한 지역에 10년간 보내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

통일과나눔 재단 지원으로 개최된 행사에서 남북·해외 청년들이 통일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아이디어를 묘사한 그림판을 들고 있다.
 
통일과나눔 재단 지원으로 개최된 행사에서 남북·해외 청년들이 통일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아이디어를 묘사한 그림판을 들고 있다.

―GDP 5%라면 올해 기준으로 약 96조원이 된다. 우리 경제가 이를 감당할 수 있나.

“금액은 크지만 국민의 세금 부담은 걱정하는 만큼 많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통일이 되면 남북 대치 비용이 대폭 줄어든다. 지금 GDP의 3% 정도 되는 국방비를 1%포인트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 GDP 20% 수준인 조세부담률을 2%포인트 정도 올릴 수 있다. 현재 쓰는 국가예산을 효율화해 절약하고 나머지는 해외에서 빌려와서 충당하고 해외투자 유치 등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에 사회간접자원을 건설하기 위한 비용은 남한보다 훨씬 적다. 남한에선 건설비의 절반 이상이 토지보상비용으로 들어가는데, 북한 지역은 전 토지가 국유화돼 있어 이렇게 막대한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매우 파격적인 제안이라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가 쉬워 보이진 않는다.

“물론 이건 지금 북한 정권에 퍼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통일 후의 상황을 가정한 하나의 선택지다. 정치권에서 당장 이슈화할 내용은 아니지만, 이런 고민, 연구를 미리 하는 것이 우리 같은 민간단체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 같은 힘들고 어려운 통합 작업을 추진해 나갈 전문 인력을 양성해 나가는 일에도 재단이 기여하려 한다.”

쉽지 않지만 통일은 갑작스럽게 온다

―이런 논의를 하다 보면 결국 ‘그런데 통일은 어떻게 하나’ ‘통일이 오긴 오나’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독일 통일 직후인 1990년대 초에 세계 각국 한반도 전문가들에게 ‘한반도 통일은 언제 될까’를 물으니 ‘5년 내’라는 답이 꽤 있었다. 가장 멀리 내다본 사람들이 ‘25년 내’라고 했는데, 아직 되지 않았고 언제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통일은 반드시, 그리고 갑작스럽게 오리라 믿는다. 정치적인 상황과 별개로, 밑바닥에서는 통일을 향한 변화와 압력이 쌓여가고 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 변화가 감지된다는 얘기인가.

“북한 정권이 통제를 강화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내부에서 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통일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북한 주민들의 선택이다. 독일 통일도 서독이 하자고 한 것이 아니라 동독 주민들이 선택한 것이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 주민들은 즉각적인 통일을 공약으로 내건 기민당 주도 독일동맹을 제1당으로 만들어 줌으로써 서독과의 통합을 선택했다. 북에서도 우월성이 입증된 제도 쪽으로 옮겨 가려는 흐름이 모여서 통합으로 가는 동력을 만들어 내고 그 동력이 통일을 견인해 낼 것이다. 이미 북한의 MZ세대들은 장마당을 통해 시장 경제를 터득해가고 있지 않은가.”

탈북민 생계 지원보다 자생력에 초점

통일과나눔 재단은 지금까지 400여 개 단체의 통일 관련 사업에 약 220억원을 지원했다. 통일 공감대 확산 사업, 통일 인적자원 개발사업, 통일의 이론적 토대와 실질적 방안 마련을 위한 학술연구 사업, 북한 사회 개발사업 등이 주를 이뤘다. 탈북민들 정착 지원도 중점 사업 중 하나다.

―현 정부 들어 탈북민들을 홀대한다는 지적이 있다.

“탈북민이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은 통일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들의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북 주민들에게 전달되고 변화를 일으킨다. 통일 후 북한 주민들에 대한 사회통합 작업의 사전 준비인 셈이다. 탈북민 홀대는 정말 이념을 떠나서 옳지 않다. 그래서 재단도 탈북민들에 대한 단순한 생계 지원이나 교육 지원보다는 자생력을 길러 주는 창업·취업 전문화 교육 등의 사업으로 바꿔 추진해 나가려 한다.”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북이 껄끄러워하는 북한 인권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북한 주민들을 위해 인도주의적 지원은 하자면서 인권 문제에 눈감는 것은 모순이다. 장기적인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라면 인권 문제는 지속적으로 거론해야 한다.”

☞이영선

1947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릴랜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와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림대 총장,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등을 지냈다. 연세대에 통일연구원을 만드는 등 북한·통일 문제에 천착했다. 그는 평안북도 용천이 원적(原籍)으로, 선친은 해방 후 신의주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이런 배경 때문에 통일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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