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당시 여권 내부의 거센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외교책사’였던 김종휘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28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지금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는 ‘대체 왜 이러느냐’는 분위기였다”면서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길게 보면 이게 맞다’ ‘통일과 나라 발전을 위해선 해야 한다’며 북방 외교에 역량을 집중했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이 1989년 3월 모교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에서 육사 교장이 졸업생도 앞에서 훈시하면서 북방 외교를 ‘적성국과 우방국의 개념을 혼동시키는 해괴한 일’이라며 정면 비판해 난리가 났다”고 했다. 김 전 총리는 “용산 미군 기지 이전을 추진할 때는 국방부 장관이 육·해·공 3군 총장들을 대동해 청와대를 찾아와 노 전 대통령에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럴 때마다 쓴소리를 다 들은 뒤 이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미국은 한·소련 관계 정상화 등 북방 외교가 수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었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은 “1990년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노 전 대통령과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됐지만, 그 전년도만 해도 미국은 우리에게 앞으로 3~4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해 왔다”고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박철언 당시 정무장관과 김 전 수석 등을 밀사(密使)로 소련에 수차례 보내고, 소련에서도 비밀리에 서울에 와 협상을 벌여 관계 정상화의 시간을 대폭 줄였다고 한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한·소 회담을 마친 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의 반발이 상당하다’ ‘노 전 대통령의 귀국 전용기를 북한이 미사일로 격추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을 전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고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들 사이에 김종휘 전 수석이 서 있다. /조선일보 DB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 이들 사이에 김종휘 전 수석이 서 있다. /조선일보 DB

김 전 수석은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초 유럽 순방을 할 때 우리 비행기가 같은 민족인 북한 상공 근처도 가지 못하고 한참 돌아서 가야 하는 분단의 현실에 안타까워했다”며 “북방 외교는 단순히 수교국을 대폭 늘렸다, 경제 시장을 확대했다는 의미를 넘어 통일을 위해 꼭 필요한 길이라고 확신해 국내외 여러 반대에도 추진한 정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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