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과 북한 ‘합작’으로 건설된 다리(bridge built in ‘collaboration’)가 있다. 기초공사(foundation work)와 교각 공사(construction of pier)는 북한이, 상판(deck plate) 공사와 마무리 공사(finishing work)는 남한이 했다. 의도했던 협업(intended cooperative work)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강원도 철원군에 있는 승일교, 길이 120m 높이 35m 폭 8m인 이 다리는 6·25 전쟁 전후로 그렇게 착공되고(be commenced) 완공됐다(be completed).

한탄강 중류 철원 동송읍 승일교(昇日橋). 1948년 북한 땅이었을 당시 북측이 공사를 시작해 6·25전쟁으로 중단했고 휴전 후 한국 땅이 된 뒤 1958년 12월 한국 정부가 완성했다.
 
한탄강 중류 철원 동송읍 승일교(昇日橋). 1948년 북한 땅이었을 당시 북측이 공사를 시작해 6·25전쟁으로 중단했고 휴전 후 한국 땅이 된 뒤 1958년 12월 한국 정부가 완성했다.

현재 철원군 동송읍 장흥4리와 갈말읍 문혜리를 잇는 이 다리는 1948년 북한 쪽 땅이었을 때 북한에서 공사를 시작했다(start work). 그런데 전쟁 발발로 중단됐다가(be halted by the advent of war) 휴전을 하면서(make a truce) 남한 땅이 돼 착공 10년 후인 1958년 12월 한국 정부에 의해 개통됐다.

승일교는 세 교각 위에 아치형을 이루고 있는데, 다리의 ‘좌파(left wing)’와 ‘우파(right wing)’ 양쪽 두 절반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식별할(discern subtle differences in the two halves of the bridge) 수 있다. 처음 북한 쪽에서 착공할 때는 옛 소련의 공법으로, 남한 측에서 완공할 때는 다른 공법(method of construction)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 쪽에서 지은 ‘좌파’ 아치 모양은 둥글고, 나중에 완성된 ‘우파’ 쪽은 둥근 네모 형태로 차이가 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지(紙)는 최근 이런 승일교를 소개하면서, 이 다리가 남북한을 이어주기도, 갈라놓기도 하는(unite and separate the two Koreas) 상징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반도 분단을 돌 위에 세워놓은(set in stone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듯하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한국에 처음 와보면 지구상 가장 잔혹한 정권(the most brutal regime on earth)인 북한이 서울에서 불과 산 서너개 저편에 있다는 사실을 감 잡기(get one’s head around it)가 어렵다면서,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저기서 들릴 듯하고, 이곳과 저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똑같은 하늘임을 알면 놀라게 된다고 전했다.

승일교라는 이름은 김일성 시절에 만들기 시작해 이승만 대통령 때 완공했다고 해서 이 대통령의 ‘승(承)’자와 김일성의 ‘일(日)’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 ‘김일성을 이기자’는 뜻에서 ‘勝日橋’라고 했다는 설 등 여럿이 있으나, 현재 공인된 정설(widely-accepted theory)은 6·25 전쟁 중 큰 공을 세우고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간 국군 연대장 박승일(朴昇日) 대령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in a bid to admire his achievements) 그의 이름을 따서(name it after him) ‘昇日橋’로 지었다는 것이다.

타임스는 “승일교는 남한과 북한 양쪽에서 놓았지만, 남북한이 함께 건설한(build it together) 것은 아니다”라면서 마치 분단된 한반도처럼 “다리 양쪽이 똑같은 구조물의 두 절반을 구성하고 있고(constitute two halves of the same structure), 남북한의 차이는 그 승일교처럼 고정불변 상태에 있다”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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