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를 재개할 수 있다는 미(美) 정보 당국의 분석이 나왔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이 잇따라 미국을 찾아 종전 선언, 대북(對北) 제재 완화 문제를 언급하는 상황에서 북한의 모라토리엄(핵실험·ICBM 발사 유예) 파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이 2020년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조선중앙TV 연합뉴스
 
북한이 2020년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조선중앙TV 연합뉴스

미 국방부 산하 국방정보국(DIA)은 15일(현지 시각) 발표한 ‘2021 북한의 군사력’ 보고서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탄도미사일에 탑재해 안정적으로 작동시키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며 “앞으로 핵실험장을 재건하거나 새로 짓는다면 그 위력을 검증하는 지하 핵실험을 추가로 실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 “새로운 고체 연료 추진 탄도미사일 개발을 이어가고, 내년엔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재개할 수도 있다”고 했다.

DIA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기반 시설 해체는 가역적으로(reversibly) 이뤄진 것”이라며 “우린 평안북도 영변 핵 시설 등지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일치하지 않는 활동을 계속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한은 2018년 9·19 남북정상회담에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전제로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를 약속했지만, 지난 7월부터 영변 핵 시설 재가동에 들어갔다.

보고서는 “북한 지도자들은 핵무기가 체제 존립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하고 이를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는 한 북한은 군사력을 계속 성장·발전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또 “북한이 WMD의 비축량이나 생산 능력 모두를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DIA 보고서 발표 직후인 16일(현지 시각) 한국 정부의 북핵 수석 대표인 노규덕 본부장은 미국·일본과의 양자·삼자 협의차 미국에 도착했다. 한미 북핵 수석 대표 회동(18일)은 지난달 30일 자카르타에서 열린 지 18일 만에 다시 열리는 것이다. 노 본부장은 러시아 출장을 마친 뒤 귀국하지 않고 워싱턴DC로 향했다.

이날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노 본부장은 “북한과의 인도적 분야에서의 협력 사업도 한미가 공동으로 하는 것으로 지금 거의 준비가 마무리돼 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을 대화에 복귀시킬 방안과 관련, “여러 가지 창의적인 다양한 방안들이 논의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노 본부장의 발언은 지난주 미국 정부가 언급한 ‘구체적 대북 제안’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4~15일 연달아 “북한에 구체적 제안들을 했고 반응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보건·의료 지원을 골자로 하는 ‘인도 협력 패키지’가 곧 윤곽을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다.

한미는 수개월 전부터 대북 인도적 지원에 뜻을 같이했지만, 북한은 이를 ‘비본질적 문제’로 치부하며 거부해왔다. 한미 공동의 ‘구체적 대북 제안’ 공개가 임박했다는 것은 거부 일변도였던 북한의 태도가 최근 누그러졌음을 시사한다. 정부 소식통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종전 선언에 북한이 흥미를 보이며 남북 통신선 복원을 예고한 지난달부터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고 했다.

이후 한미는 외교장관 회담(12일 파리), 안보실장 회동(18일 워싱턴DC)을 잇따라 개최하며 대북 인도적 지원과 종전 선언 논의를 이어갔고, 이번 북핵 수석 대표 회동을 통해 최종 조율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인도 지원과 달리 한국 정부의 의지가 강한 제재 해제에 대한 미 측의 회의적 입장은 여전한 상황이다. 이 같은 입장은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DIA 등 미 정보 당국의 분석에 기초한 것으로, 북한이 유의미한 비핵화 조치에 나서기 전까진 바뀌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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