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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서 44년간 비참한 삶, 김정은 정권이 배상해달라” 일본서 첫 재판
도쿄=최은경 특파원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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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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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부를 상대로 5억엔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재일교포 북송 피해자들과 지지자들이 14일 오전 재판 개요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도쿄지방재판소 정문에 들어가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날 소송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북한 정부를 상대로 5억엔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재일교포 북송 피해자들과 지지자들이 14일 오전 재판 개요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펼쳐 들고 도쿄지방재판소 정문에 들어가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날 소송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오늘 재판은 일본 법정 사상 최초로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역사적인 재판입니다.”

14일 오전 10시 도쿄 지요다구 도쿄지방재판소 103호실, 이날 재판은 ‘역사적인 재판’이라는 후쿠다 겐지 변호사의 변론으로 시작됐다. 재일교포 북송(北送) 사업으로 북한에 갔다 탈북한 가와사키 에이코(79)씨 등 피해자 5명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를 제기한 지 약 3년 만에 열린 첫 재판이었다. 이날 재판의 피고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피고의 대표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었다. 하지만 재판정 오른편의 피고석 4자리는 텅 빈 상태였다.

가와사키씨 등은 지난 2018년 8월 “북한 정부의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허위 선전에 속아 북한으로 건너갔다가 인권을 억압당했다”며 북한에 총 5억엔(약 52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냈다. 1959~1984년 이뤄진 ‘재일교포 북송 사업’을 북한 정부의 계획적인 유괴 범죄로 규정하고 책임을 묻는 소송이다. 재일교포와 그 가족 9만3340여 명은 가난과 차별을 피해 북한 이주를 택했다가 대부분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가와사키씨 등 원고 5명은 모두 1960~1970년대 허위 선전을 믿고 북한에 건너갔다가 2000년대 탈북, 일본에 돌아왔다. 당시 일본 정부는 일제강점기에 끌려온 재일교포를 한반도로 돌려보낼 기회로 보고 이를 암묵적으로 지원했었다.

원고 중 가장 먼저 증언대에 선 가와사키씨는 또렷한 목소리로 막힘없이 자신의 북한 생활을 회고했다. 그는 “북한은 지상낙원” “북한에선 배불리 먹으며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조선 학교 교사들의 말을 믿고, 고3 때인 1960년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으로 건너갔다. 그러나 그는 북한 땅을 밟은 지 얼마 안 돼 자신이 철저히 속았음을 깨달았다. 이후 2004년 탈북할 때까지 가난과 통제로 점철된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고 증언했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14일 '재일동포 북송사업'에 대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가와사키 에이코(중앙) 등 원고와 지지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서 14일 '재일동포 북송사업'에 대해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가와사키 에이코(중앙) 등 원고와 지지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가와사키씨는 양손을 무릎 위에 얹은 채 허리를 곧게 세워 앉은 자세를 증언하는 약 1시간 내내 유지했다. 하지만 북에 남겨둔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엔 끝내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보였다. 손자는 일본으로 탈출한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군대 상관들의 금품 상납 요구에 시달리다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수차례 왼팔로 눈물을 훔쳐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국경이 닫힌 뒤론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 생사도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북송 사업으로 건너간 9만여 명 대다수는 정신적인 충격, 빈곤, 정치범 수용소 생활 등으로 사망했지만 그 자녀와 손주 수십만 명이 살아있다”며 “이들이 목숨을 건 탈북을 하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가와사키씨는 탈북 후, 일본 정부의 보호를 받고 북한에 소송을 제기하고자 일본 국적으로 귀화했었다.

북한 정부와 김정은 위원장을 피고로 세운 이날 재판엔 큰 관심이 쏠렸다. 오전부터 방청을 원하는 시민, 기자 등 100여 명이 재판소에 몰려 방청객은 추첨으로 선발해야 했다. 고령의 원고들이 수시간 동안 재판정에 앉아있는 것을 힘들어해 판사가 휴식을 제안하기도 했다. 가와사키씨는 고령의 나이를 거론하며 “남은 생애에 북에 남은 자식 4명과 손주 5명을 만날 수 있도록 재판부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현대 국가에서는 통상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성립되지 않는다. 국제법상 타국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 ‘주권 면제’ 조항이 통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재판부는 ‘북한은 국제적으로 미승인된 국가’라는 원고 변호인단의 주장을 받아들여 정식 재판을 결정했다.

북한에 소장을 송달할 방법이 없어서 법원 게시판에 소장 접수 사실을 알리는 공시 송달 방식을 채택했다. 2015년 북한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부모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소를 제기해 승소한 점도 재판이 열리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 이어 일본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커 북한 정권에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피해자들과 지원자들은 정식 재판이 성사된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 20년간 북송 사업 피해자의 법적 투쟁 등을 지원해 온 야마다 후미아키(73) 전 북조선 귀국자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는 “북한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는 재판이 일본에서 열리게 된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도이 가나에 휴먼라이츠워치 일본 지부장은 “원고들의 증언은 북한의 북송 사업이 ‘인권 재앙’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시켜줬다”며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북한 정부에 북송 사업 피해자와 그 가족의 일본 귀환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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