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지난 25일 담화에서 종전 선언과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중 기준 철회’를 요구한 지 사흘 만에 이뤄졌다. 김여정은 자신들의 무기 개발에 대해 ‘도발이라는 막돼먹은 평’을 하는 것을 이중 기준이라고 했다. 이날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를 소집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이면서도 ‘도발’이란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명백한 대남 무력 시위이자 도발이지만, 김여정이 ‘이중 기준 철회’를 언급한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이날 미사일 발사 직후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유엔 총회 연설을 통해 “미국이 진정으로 평화와 화해를 바란다면 조선 반도와 그 주변에서 합동군사연습과 전략 무기 투입을 영구 중지하는 것으로부터 대조선 적대 정책 포기의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했다. 김여정이 이중 기준 철회와 함께 요구한 ‘대조선 적대시 정책 철회’의 1단계가 한미 연합훈련 영구 중단이라고 주석을 단 것이다. 북한의 주요 관심사가 문재인 정부의 기대하는 종전 선언이나 남북정상회담이 아니라 이중 기준과 대북 적대시 정책의 철회, 나아가 제재 해제 등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북한은 이날까지도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 지구 군 통신선 채널을 통한 통화 시도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이날 우리 정부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NSC 상임위원회는 “유감”이라고만 했고, 국방부는 “북의 발사 상황이나 의도를 분석·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통일부는 “예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탄도미사일이거나 최소한 탄도미사일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탄도미사일이란 언급은 나오지 않았다.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이는 미국의 반응과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한다”며 “이번 발사는 복수의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것으로, 북한의 이웃 국가들과 국제사회에 위협이 된다”고 했다. 이번 도발을 탄도미사일 발사로 판단한 것이다.

예비역 장성 A씨는 “우리 군은 북한의 눈치를 보는 청와대를 의식해 ‘도발’ ‘탄도’란 표현을 끝까지 안 쓸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이스칸데르, 초대형 방사포 등 대남 타격용 신무기들을 연속 발사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당시 ‘탄도미사일’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강조한 미국·일본과 달리 우리 군은 ‘미상의 발사체’ ‘불상의 발사체’ ‘단거리 발사체’ 등의 모호한 표현을 고집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탄도미사일’ 언급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청와대가 “‘단거리 미사일’이라고 하려다 ‘단도 미사일’로 말이 헛나온 것”이라고 해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말 남북 쇼에 대한 미련 탓에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방조하고 있다”며 “정치적 이유로 북한 도발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하는 처사”라고 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