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장관이 23일 미국외교협회(CFR) 초청 대담에서 ‘중국이 최근 공세적 모습을 보인다’는 CNN 앵커 지적에 “중국이 경제적으로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 20년 전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중국이 주장하려는 것을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 장관은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것인가’란 질문에 “한국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국 정부에 이 말은 ‘미국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릴 것이다.

지난해 주미 한국 대사가 ‘이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했을 때, 미 국무부는 “한국은 수십 년 전 미국을 선택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었다. 외교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공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물 밑으로는 그런 선택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 정치의 현실이다. 한국이 70년간 북한 위협을 막아내며 세계적 경제 기적을 이룬 근본 바탕은 한미 동맹이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세계에서 한국을 가장 업신여기고 들 나라가 중국이다. 정 장관 본인이 대통령 특사로 중국에 가 홍콩 행정장관이 앉는 하석에 앉았던 경험을 했다.

정 장관은 앵커가 한국을 미·일·호주 등과 ‘반중(反中) 블록’으로 구분하자 “냉전 시대 사고방식”이라고 했다. ‘냉전 사고’는 중국이 미국의 동맹 정책을 비난할 때 쓰는 말이다. 그는 ‘북이 핵을 포기하리라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변하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고 보증했던 사람이 정 장관이다. 그러면서 북의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에 대한 ‘보상’ 필요성을 거론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때”라고 했다. 국제원자력기구가 ‘전력 질주’라고 우려할 만큼 북한이 핵시설을 다시 돌리고 있는데도 한국 외교장관이 북에 보상을 해주자고 한다.

정 장관이 이러는 속내는 뻔히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했다. 정 장관이 노골적으로 중국과 북한 편을 든 것도 베이징 남북 이벤트 때문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에서 중국이 포함된 ‘4자 종전 선언’을 제안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은 도쿄올림픽 불참으로 IOC(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올림픽 참가 자격을 제한당했다. 문 정권의 남북 쇼에 비상등이 켜졌다. 지금부터 IOC를 대상으로 한 치열한 로비가 벌어질 것이다. 2월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이 핵을 버릴 것이라고는 문 정권도 믿지 않을 것이다. 3월 대선에 미칠 영향만 계산하고 있다. 미국에 가서 중국 편을 든 비상식적인 행태는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